[시론] 시스템 부재가 빚은 '인사 촌극'
사람을 잘못 쓰면 조직이 위태로워진다. 기업이나 사회단체, 정당과 정부 조직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필요한 소양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억지로 앉히면 탈이 생기게 마련이다. 일차적으로 해당 조직 구성원들이 함량 미달 인사가 일으키는 각종 잡음과 논란을 뒤치다꺼리하느라 일하지 못하고 이차적으로 그 여파가 주변으로 번져 조직 전체가 흔들리면 인사권자의 말에 영이 서지 않는다. 요즘 국가적 주요 기관의 인사가 대개 이런 식이다.

헌법기관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는 인사의 핵심인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근본에서부터 훼손하는 자녀 특혜 채용으로 전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의석수 167석의 제1야당도 대표의 인사 실패로 내홍이 격화하고 있다. 대표가 내놓은 혁신위원장 카드는 더 큰 혼란과 당내 계파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정중동이고 내밀함이 생존의 기본인 국가 정보기관에서조차 인사 잡음이 부상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4명의 장관급 후보자가 자진사퇴했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는 아들의 학폭 논란으로 날아갔고, 새로 임명이 예고된 방송통신위원장도 아들 학폭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인사시스템 부재에 따른 ‘그때그때 달라요’와 입맛 맞추기 촌극 인사 때문이다.

뉴스 1면을 장식하는 높으신 분들의 인사 실패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사권자도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이를 극복하고 만회할 시스템이 없거나 있어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은 매출 부진, 기술개발 실패, 시장점유율 축소 등 성적표를 기반으로 인사 결과를 문제 삼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인사 시작 단계에서 말썽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기업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 커짐에 따라 오너, 경영자의 개인적 역량에 의존한 인사로는 더 이상 효율적인 인사를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철저히 시스템으로 인사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인사시스템 부재로 인한 정치권의 혼란은 소모적인 정쟁과 국가기관의 조직 역량 약화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론 국력 낭비와 미래에 대한 위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신문과 방송을 통해 쏟아지는 뉴스의 대부분이 인사 실패와 이로 인한 정쟁과 분열로 채워져 있다. 기업에 비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독 뒤처진 우리 공적 영역의 인사시스템을 하루속히 가다듬지 않으면 아까운 우리 사회의 성장동력을 헛되이 낭비하게 된다.

사람을 기르고, 뽑고, 배치하고, 승진하고 해임하는 행위는 철저히 시스템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사람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가령 인사권자가 능력 있는 사람을 모두 알지 못하므로 인재풀을 미리 작성해 놓는다거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권자의 선택에 차마 바른 소리 할 용감한 개인은 없으므로 이들이 익명성의 장막 뒤에서 제대로 견제구를 날릴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는 식이다. 정치권의 인사 논란도 더 이상 진영 문제로 봐선 안 된다. 인사는 규칙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책임자의 인사에 대한 무지가 사회적 역동성의 낭비를 불러옴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충분한 자격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공직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정당과 사회의 인재 양성 시스템은 언제나 갖춰질까. 국가의 핵심 인재인 공무원이 역량껏, 소신껏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G3 선진국 도약을 위한 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