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비, 청소 등 32개 분야에만 허용된 파견 업종을 확대하기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했다.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한 국내 파견제도가 도입 25년 만에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2일 재계와 노무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올 4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사내하도급 등 비정규직 활용 실태조사’를 했다. 고용부는 이들 기업에 보낸 협조 요청 공문에서 기업에 불법 파견 등과 관련한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한 사전 진단을 조사의 명목으로 내세웠다. 궁극적인 목적은 파견 업종 확대를 위한 밑그림 작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실태 조사를 하는 노무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파견 업종 확대를 염두에 둔 조사라는 취지로 설명했다”며 “파견 기간 연장, 파견과 도급 간 구별 기준 마련, 파견업체 시장 확대 등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고용부는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2023년 주요 업무계획’에서 파견과 관련한 법과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파견법 개정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이라며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현행 파견법은 경비, 청소, 주차 관리, 자동차 운전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뿌리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파견이 허용된 업종도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면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경직적인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제조업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에서 법원이 잇달아 근로자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제조업에서는 도급마저 제약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2년 넘게 일한 협력업체 근로자 59명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도급계약에서 허용하지 않는 원청(포스코)의 지휘·명령을 받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을 법제화하고, 허용 업종을 확대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등 14개국은 파견 업종과 사용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독일 일본 등은 제조업 전반에서 사내 협력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파견법 개정은 야당과 노동계 설득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는 파견법 개정을 핵심 노동개혁으로 추진했으나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양대 노총 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