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하청노조와 교섭하라"…CJ대한통운 소송 2차전에 쏠린 눈
사건번호 : 서울행정법원 2021구합71748
교섭 의무 관련 소송서 원청이 하도급 노조에 패소한 건 처음
2심 앞두고 기업들 촉각 …
CJ대한통운, 베테랑 변호인단 새로 꾸려
CJ대한통운이 하도급 관계인 택배기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다투는 소송전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1심 때처럼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라는 결론이 나면 산업계의 긴장감은 한층 증폭될 전망이다. 1·2차 하도급 업체를 둔 완성차 제조사뿐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에 청소나 경비 등을 맡기는 기업까지도 “교섭에 응하라”는 하도급 근로자들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상대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조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최근 택배기사 노조의 손을 들어준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 1심(사건번호:2021구합71748)에 불복해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6-3부가 재판(사건번호:2023누34646)을 맡는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정용석)는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와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노조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엇갈린 판결에 끙끙 앓는 기업들

당초 법조계에선 1심에서 중노위 판정이 취소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동안 하도급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두고 벌어진 소송에선 원청이 계속 승소해왔기 때문이다. 과거 전국금속노동조합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1·2심에서 잇달아 패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원에선 원청이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 근로자들과 교섭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재판부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봤다. 원청과 하청 근로자 사이에 명시된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더라도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다면 하청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에 임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관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된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CJ대한통운의 주장은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8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공동합의 성실 이행 촉구 택배 노동자 결의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8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공동합의 성실 이행 촉구 택배 노동자 결의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중노위가 2021년 6월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과 단체교섭할 권리가 있다고 판정하면서 비롯됐다. 2020년 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아니다”며 택배노조의 구제 신청을 각하했지만, 중노위가 7개월 만에 판정을 뒤집었다. 당시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실질적으로 택배기사 업무에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정에 반발한 CJ대한통운이 그해 7월 판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분쟁이 본격화했다.

CJ대한통운, 2라운드에서 반격 준비

택배노조는 판결 이후 CJ대한통운에 더욱 적극적으로 교섭 요구에 나서고 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CJ대한통운이 또다시 교섭을 거부하면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형사 고발하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교섭을 강제하는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CJ대한통운 측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하도급 노동조합들은 “원청과의 교섭권을 보장해달라”며 원청에 과감하게 맞서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1심에서는 김춘호·이현석·최누리샘·이현선 김앤장 변호사가 대리했으나 변호인단의 대규모 다이어트가 이뤄졌다. 2심부터는 판사 경력 20년의 최형표 김앤장 변호사가 단독으로 소송을 준비한다.
CJ대한통운 종로 사옥. 한경DB
CJ대한통운 종로 사옥. 한경DB
최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해 사법연수원 28기를 수료하고 2002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판사 생활을 거쳐 2012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 2015년 대법원 재판관 연구관으로 근무했다. 또 2019년부터 약 2년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했다.

최 변호사는 판사 시절 각종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며 주위 법관들로부터 탁월한 재판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10년 경찰이 지적장애 청소년에게 허위자백을 유도하고 구속한 사건과 2011년 수감 중인 심리 불안 상태의 트렌스젠더에게 가위를 건네 자해를 막지 못한 사건 등에 국가배상을 인정한 판결로도 유명하다.

관련 업계 지각변동 … “혼란 이어질 것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현행법하에서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둘러싼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사측이 불법행위를 한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사실상 제약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가, 수정 과정에서 하도급 근로자의 원청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까지 추가됐다.

산업계에서는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둘러싼 대립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노위에 이어 법원까지 하도급 노조 측 손을 들어주면서 원청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근거가 더욱 두터워져서다. 업계 관계자는 “하도급 업체를 둔 기업뿐만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에 청소나 경비 등을 맡기는 기업에서도 하도급 노조의 교섭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펌 등 법조계는 관련 사건에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근로계약 관계를 기반으로 단체교섭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주류 입장이었으나 이번 판결로 법원이 실질적 지배력을 매개로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변경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번 판결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동종 사건(2018다296229 사건)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실제로 1년7개월 전 중노위가 택배노조의 원청 교섭권을 인정한 뒤 산업계에선 하도급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일이 잇따랐다. 현대자동차·기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롯데글로벌로지스 한국GM 등이 같은 문제로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제철이 연이어 중노위로부터 하도급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던 상황이었다.

법조계에선 현대중공업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나올 때까진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J대한통운이 항소심에서도 판결을 뒤집지 못하면 업계에서 관련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슷한 사안으로 현대중공업은 금속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두고 법원에서 3년여간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갈수록 민감한 사안이 되면서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판단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