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 무비] ⑥탄광촌 소년의 출발선은 공정했나…'빌리 엘리어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편집자 주 = 영상이 문자를 압도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연합뉴스는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발맞춰 전북지역 현안과 사건·사고를 톺아보고 이를 영화, 문헌과 접목해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기사를 2주에 한 번씩 10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탄광 폐쇄를 발표한 1984년 영국 북동부 탄광촌 더럼.
어머니를 여읜 11살 소년 빌리(제이미 벨)는 광부 아버지와 나이 차가 꽤 나는 형,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
석탄노조 파업으로 자리를 비운 아버지와 형을 대신에 할머니를 돌본다.
아버지는 빌리를 강하게 키우려고 권투 수업에 보내지만, 빌리는 같은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발레 수업에 넋을 놓는다.
발레에 흠뻑 빠진 빌리는 체육관에서도 집에서도 온통 발레 연습뿐이다.
하나씩 동작을 완성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아버지와 형은 여자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격렬히 반대했으나 빌리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의 재능을 발견한 발레 교사 윌킨슨 부인은 빌리에게 춤을 가르치고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아버지는 완고하기만 하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생활이 궁핍해진 아버지는 아내의 유산인 피아노를 부숴 땔감으로 만든다.
성탄절에 이 땔감으로 불을 쬐면서 '강철' 같았던 아버지는 결국 애달프게 눈물을 보인다.
매섭게 추운 어느 겨울날, 아버지는 체육관에서 몰래 연습하던 빌리를 우연히 목격한다.
그토록 열정적이고, 그토록 눈빛이 형형한지를 알지 못했던 아버지는 마음을 고쳐먹고 아들의 절박한 꿈을 응원하기로 한다.
그리곤 아내가 남긴 패물을 들고 전당포에 간다.
결국 아버지는 동료들에게 '배신자' '반역자'란 악담까지 들어가며 파업 현장이 아닌 광도로 들어간다.
빌리에게 기회를 주자며. 아들을 위해 신념을 꺾은 것이다.
그렇게 빌리 부자는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위해 런던행 버스에 오른다.
냉소적인 심사위원들 앞에서 엉성한 발레를 선보인 빌리는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주눅 든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일단 추게 되면 모든 걸 잊게 돼요.
그리곤 잊게 돼요.
내가 아닌 것처럼요.
내 몸이 변하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워져요.
마치 제가 나는 것 같아요.
새처럼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요.
"
심사위원들은 빌리의 열정과 진심에 높은 점수를 주고 합격시킨다.
빌리가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아버지는 기쁨에 겨워 동료들에게 달려가지만, 파업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대처 정부의 강경 대응에 파업은 1년 만에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빌리가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나는 장면과 아버지와 형이 돈을 벌고자 다시 갱도로 내려가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빌리는 꿈을 향해 비상했지만, 아버지와 형은 하강한다.
영화의 주제가 개천에서 용 나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성장 이야기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아버지와 형은 빌리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런던에 간다.
마지막 컷은 성인이 된 빌리가 힘껏 솟구쳐 날갯짓하는 장면에서 정지한다.
2001년 개봉한 '빌리 엘리어트(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소년이 발레리노를 꿈꾸는 영화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깔린다.
1970년대 록 음악을 중심으로 구성돼 귀를 즐겁게 한다.
'Cosmic Dancer' 'Get It On' 'I Love To Boogie' 등 마크 볼란이 이끌었던 'T.Rex'의 음악이 다수 수록됐다.
영화는 '공정' 이슈가 떠오른 현재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탄광촌 소년 빌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공정했나? 출발선은 같았나?
공정 이슈는 출발선 자체가 달라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없는 현재 상황에 절망한 청년들의 실존적 고민이기도 하다.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 가운데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차 조사(1990∼1994년) 때 8.4%였으나 7차 조사(2016∼2020년)에선 20.8%로 크게 늘었다.
땀의 노력이 존중받기보다는 계층 이동성이 갈수록 약화한다는 방증이다.
부의 대물림 확산과 이에 따른 경제적 지위 이동 가능성이 작아지면 사회 갈등이 증폭할 개연성이 크다.
'그건 부당합니다'의 임홍택 작가는 "지금 젊은 세대가 단지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고 이에 맞춰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그 예로 스포츠 경기의 공정한 규칙을 든다.
임 작가는 스포츠 경기에 적용되는 기본적 수준의 '공정'을 우리 사회에 접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첫 번째로 '반칙 없는 경쟁 과정'을 만들고 두 번째로는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정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는지는 바로 필드에서 뛰는 당사자들이 '반칙'을 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경기에 뛰는 선수들은 출발선에 서서 '이 경기가 진짜로 공정하게 진행될까?'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룰을 숙지하고 게임에 참여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내달릴 뿐이다"고 진단한다.
"출발선만이라도 공정하자"란 청년들의 호소가 커지는 이 시대에 '빌리 엘리어트'는 소득·교육·기회·불평등·계층 이동에 대해 고민할 소재가 가득한 극현실주의적 영화다.
※ 참고 문헌 : 임홍택 '그건 부당합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발맞춰 전북지역 현안과 사건·사고를 톺아보고 이를 영화, 문헌과 접목해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기사를 2주에 한 번씩 10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탄광 폐쇄를 발표한 1984년 영국 북동부 탄광촌 더럼.
어머니를 여읜 11살 소년 빌리(제이미 벨)는 광부 아버지와 나이 차가 꽤 나는 형,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
석탄노조 파업으로 자리를 비운 아버지와 형을 대신에 할머니를 돌본다.
아버지는 빌리를 강하게 키우려고 권투 수업에 보내지만, 빌리는 같은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발레 수업에 넋을 놓는다.
발레에 흠뻑 빠진 빌리는 체육관에서도 집에서도 온통 발레 연습뿐이다.
하나씩 동작을 완성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아버지와 형은 여자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격렬히 반대했으나 빌리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의 재능을 발견한 발레 교사 윌킨슨 부인은 빌리에게 춤을 가르치고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아버지는 완고하기만 하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생활이 궁핍해진 아버지는 아내의 유산인 피아노를 부숴 땔감으로 만든다.
성탄절에 이 땔감으로 불을 쬐면서 '강철' 같았던 아버지는 결국 애달프게 눈물을 보인다.
매섭게 추운 어느 겨울날, 아버지는 체육관에서 몰래 연습하던 빌리를 우연히 목격한다.
그토록 열정적이고, 그토록 눈빛이 형형한지를 알지 못했던 아버지는 마음을 고쳐먹고 아들의 절박한 꿈을 응원하기로 한다.
그리곤 아내가 남긴 패물을 들고 전당포에 간다.
결국 아버지는 동료들에게 '배신자' '반역자'란 악담까지 들어가며 파업 현장이 아닌 광도로 들어간다.
빌리에게 기회를 주자며. 아들을 위해 신념을 꺾은 것이다.
그렇게 빌리 부자는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위해 런던행 버스에 오른다.
냉소적인 심사위원들 앞에서 엉성한 발레를 선보인 빌리는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주눅 든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일단 추게 되면 모든 걸 잊게 돼요.
그리곤 잊게 돼요.
내가 아닌 것처럼요.
내 몸이 변하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워져요.
마치 제가 나는 것 같아요.
새처럼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요.
"
심사위원들은 빌리의 열정과 진심에 높은 점수를 주고 합격시킨다.
빌리가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아버지는 기쁨에 겨워 동료들에게 달려가지만, 파업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대처 정부의 강경 대응에 파업은 1년 만에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빌리가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나는 장면과 아버지와 형이 돈을 벌고자 다시 갱도로 내려가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빌리는 꿈을 향해 비상했지만, 아버지와 형은 하강한다.
영화의 주제가 개천에서 용 나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성장 이야기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아버지와 형은 빌리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런던에 간다.
마지막 컷은 성인이 된 빌리가 힘껏 솟구쳐 날갯짓하는 장면에서 정지한다.
2001년 개봉한 '빌리 엘리어트(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소년이 발레리노를 꿈꾸는 영화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깔린다.
1970년대 록 음악을 중심으로 구성돼 귀를 즐겁게 한다.
'Cosmic Dancer' 'Get It On' 'I Love To Boogie' 등 마크 볼란이 이끌었던 'T.Rex'의 음악이 다수 수록됐다.
영화는 '공정' 이슈가 떠오른 현재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탄광촌 소년 빌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공정했나? 출발선은 같았나?
공정 이슈는 출발선 자체가 달라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없는 현재 상황에 절망한 청년들의 실존적 고민이기도 하다.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 가운데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차 조사(1990∼1994년) 때 8.4%였으나 7차 조사(2016∼2020년)에선 20.8%로 크게 늘었다.
땀의 노력이 존중받기보다는 계층 이동성이 갈수록 약화한다는 방증이다.
부의 대물림 확산과 이에 따른 경제적 지위 이동 가능성이 작아지면 사회 갈등이 증폭할 개연성이 크다.
'그건 부당합니다'의 임홍택 작가는 "지금 젊은 세대가 단지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고 이에 맞춰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그 예로 스포츠 경기의 공정한 규칙을 든다.
임 작가는 스포츠 경기에 적용되는 기본적 수준의 '공정'을 우리 사회에 접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첫 번째로 '반칙 없는 경쟁 과정'을 만들고 두 번째로는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정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는지는 바로 필드에서 뛰는 당사자들이 '반칙'을 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경기에 뛰는 선수들은 출발선에 서서 '이 경기가 진짜로 공정하게 진행될까?'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룰을 숙지하고 게임에 참여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내달릴 뿐이다"고 진단한다.
"출발선만이라도 공정하자"란 청년들의 호소가 커지는 이 시대에 '빌리 엘리어트'는 소득·교육·기회·불평등·계층 이동에 대해 고민할 소재가 가득한 극현실주의적 영화다.
※ 참고 문헌 : 임홍택 '그건 부당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