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부 "미혼모 아이로 위장 사례…알선료 건당 3천∼4천달러"
당시 정부, 입양 실태 알고도 '대외비'…진실화해위, 서류 위조 의혹 사건 조사
거액 알선료 노리고 입양서류 위조 정황…35년전 정부 문건 확인
과거 해외입양기관들이 거액의 알선수수료를 노리고 입양서류를 위조한 정황이 정부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이같은 정황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4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1988년 11월 보건사회부 아동정책과가 입양알선기관장에게 보낸 '입양사업제도개선 기관장회의자료' 문서에는 입양기관의 아동신원 서류 조작 사례가 언급됐다.

보사부는 자료에서 "미혼모의 아동을 입양기관이 인수할 때 입양요청 구비서류에 미혼모의 아동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누락되고 확인 없이 인수한다"며 "미혼모의 아동이 아닌데도 미혼모의 아이로 위장돼 입양되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입양기관들이 '입양 홍보'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문건도 있다.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1988년 입양기관 실무자 합의내용' 문건에는 입양기관들이 서울 시내 '달동네'를 비롯해 조산소, 미혼모 시설, 아동복지시설에서 입양 홍보활동을 벌인 사실이 기록됐다.

당시 입양기관들이 분만보조금과 시설운영비 지급을 포함한 각종 찬조금품 지원을 중지하기로 합의한 점으로 미뤄 각종 금품을 앞세운 공격적인 입양 경쟁이 횡행했음을 알 수 있다.

거액 알선료 노리고 입양서류 위조 정황…35년전 정부 문건 확인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980년대 입양기관의 실태를 증언했다.

정 교수는 "1984년 여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서 아동보육실태조사를 하며 가가호호 방문할 때마다 주민들이 '우리 애 안 판다'고 말했다.

입양기관들에서 먼저 다녀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강북지역 빈곤층 거주지 가운데 하나였던 창신동에 '해송아기둥지'라는 탁아소를 막 열고 운영하던 참이었다.

정 교수는 "'탁아'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창신동처럼 가난한 동네에선 아이들을 방에 잠가놓고 일하러 나가거나 이웃집에 맡기면서 키웠다"며 "이처럼 아이를 키우기 힘든 가정에 입양을 제안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양기관이 이처럼 아동 확보에 열을 올린 건 막대한 입양수수료를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88년 보건사회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에는 4개 입양기관이 입양비 1천450달러와 함께 당시로선 큰 돈인 3천∼4천달러의 알선비를 양부모에게 추가로 받는다고 적혀있다.

거액 알선료 노리고 입양서류 위조 정황…35년전 정부 문건 확인
당시 정부는 문제를 인지하고도 되레 해외입양 통계 내역을 '대외비'로 취급해 하급기관에 보안유지에 힘쓰라고 지시했다.

1986년 보사부는 서울시 부녀청소년과장에게 '국외입양사업의 보안유지 철저'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내 "국외 입양사업과 관련된 사항은 가능한 한 대외에 누설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특히 통계 숫자는 반드시 대외비에 준하여 취급해달라"고 지침을 내렸다.

1988년 9월 개막한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서는 '국가 위신 실추'를 우려해 입양 사업을 일시 중단하라고 지시한 문건도 있었다.

1988년 6월 보사부 아동정책과가 홀트아동복지회장, 대한사회복지회장 등 입양알선기관장에게 보낸 '88올림픽 행사 협조'라는 문서에는 "88서울올림픽 개최 기간을 전후해 외국인들이 내방하게 되는바 아국(대한민국)의 국외입양사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그릇된 내용이 국외에 알려질 경우 국가 위신이 실추될 우려가 있다"고 쓰여있다.

이어 "1988년 7월31일까지 국외입양 허가한 아동에 대해서는 8월10일까지 출국 완료조치하기 바란다"며 "8월1일∼10월30일까지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외입양을 허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적혔다.

거액 알선료 노리고 입양서류 위조 정황…35년전 정부 문건 확인
보사부 문건을 토대로 진실화해위는 입양서류 조작 의혹을 제기한 윌리엄 보르헤스(54)씨 사건을 조사 중이다.

40여년전 미국으로 보르헤스씨는 입양서류에 적힌 입양 날짜와 자신의 가족관계 내역이 조작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지난해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는 1969년 1월 대전의 한 근교 농촌에서 태어나 만 6세였던 1975년 7월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인 사업가에게 입양돼 1978년 미국으로 갔다.

보르헤스 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기억과 입양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달라 의문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아버지는 내가 입양된 1976년 12월13일을 특별히 여겨 매년 기념일처럼 축하했다"며 "하지만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은 입양서류에는 제가 이듬해 2월에 입양됐다고 기록돼 약 두 달 정도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또 보육원에 갈 당시 시장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걷다 낯선 남자가 자신을 데려갔다며 "엄마를 찾으며 계속 울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홀트는 (내) 엄마가 도시에 거주하는 미혼의 재봉사로, 너무 가난해서 나를 고아원에 맡겼다고 설명했지만 시골의 농장에서 자란 기억이 있다"며 "엄마와 아빠에 대한 이미지도 선명하다.

당시 마을의 이미지, 그곳에서 놀던 다른 아이들에 대한 기억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