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왼쪽 위)가 화상으로 진행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왼쪽 위)가 화상으로 진행하는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보완 검토”를 지시하면서 주 52시간제 개혁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고용부 입법예고안에 대해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보완 지시를 내린 만큼 고용부가 원안을 고수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고용부 입법안은 주 52시간제 관리기간을 현행 ‘1주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바꾸는 것이다. 대신 관리기간이 늘어날수록 연장근로시간을 10~30% 줄여준다. 또 연장근로를 모아뒀다가 휴가로 쓸 수 있는 근로시간저축제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전체 일하는 시간은 늘리지 않으면서 바쁠 때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안 바쁠 때 ‘한 달짜리 휴가’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고용부 개편안의 핵심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주당 최대 69시간 근무’만 부각시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고 반발해왔다. 이때만 해도 으레 노동계 반발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 정부가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MZ 노조협의체(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마저 “근로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 사회의 노력과 역사적 발전 과정에 역행한다”며 반대하고, MZ세대 사이에서 “있는 휴가도 못 쓰는데 장기휴가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고용부의 대국민 소통에 문제가 있다며 이정식 고용부 장관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고용부의 국민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며 “청년 목소리를 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용부 소통 부족" 질책한 尹…여론에 밀려 '주52시간 개혁' 후퇴하나
고용부는 이후 “청년 등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을 토대로 다양한 보완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입장문을 냈다. 이 장관은 오는 22일 새로고침 협의체와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16일 이 협의체와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보완 검토’ 발언은 정부·여당과 충분한 사전 교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는 대통령의 보완 지시 후 한동안 배경 파악에 분주했고, 여당 일각에선 “별다른 협의 없이 여론에 떠밀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변경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윤 대통령의 발언 진의를 두고도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입법예고안에 대해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며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대통령 지시는 홍보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데다 MZ세대마저 반발하는 상황에서 결국 ‘주당 최대 69시간 근무를 수정하라는 지시나 마찬가지’라는 시각도 있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근로시간 총량에 캡(한도)을 씌워보자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당 최대 69시간 대신 산업재해 관련법상 ‘과로’ 판단 기준인 주당 최대 64시간으로 낮추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에 대해 대국민 여론조사를 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선 주 52시간제 개편안을 대폭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곽용희/오형주/맹진규/강진규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