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불안 성범죄자 재범률↑…성범죄자 쫓아내려 '포켓공원' 편법도
"법 내용 강력하지만 실효 '애매하다'는 지적 나와"
[한국판 제시카법] '원조' 미국서 한계 지적…성범죄자 길거리로
고위험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하는 일명 '한국형 제시카법'의 원조는 미국 플로리다주 주법이다.

플로리다주에서 2005년 시행 뒤 미국 내 30여개 주에서 도입했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하는 데 그칠 뿐 사회로 복귀하기 어렵게 하고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도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시카법 적용 지역을 늘리기 위한 편법이 횡행하고, 모호한 규정으로 집행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은 이 법을 본 따려는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법은 강력하지만 실효는 '의문'
한국형 제시카법은 재범 우려가 큰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미성년자 교육 시설에서 최대 500m 안에 살지 못하는 방향으로 전자장치부착법을 개정하는 내용이다.

법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제시카법의 강력한 처벌 수위에 비해 실질적인 범죄 감소 효과는 크지 않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

송세련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사례 등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제시카법을 도입하더라도 (성범죄자의) 재범률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높은 수준의 제재를 가하는 법 내용과 비교해 효과가 확실치 않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제시카법의 전제는 성범죄자가 미성년자와 가깝지 않을수록 범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대다수 성범죄자는 소아성애증이 없으며 오히려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을 때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고 짚었다.

성범죄자가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면 재범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판 제시카법] '원조' 미국서 한계 지적…성범죄자 길거리로
◇ 길거리로 내몰린 성범죄자들…재범률도 '쑥'
일부 연구에서는 제시카법 도입 후 재범률이 오히려 높아지는 '모순'이 발견됐다.

허경미 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공안행정학회보에 게재한 '미국의 성범죄자 등록·공개·취업제한 제도에 대한 비판적 쟁점' 논문에서 이러한 해외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성범죄자가 살 곳을 찾기 힘들어지면서 노숙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캘리포니아주 성범죄관리이사회는 이 주에서 제시카법이 시행되고 5년 뒤인 2011년 보고서에서 성범죄 전과가 있는 노숙자가 88명에서 2천여명으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2014년 10월 제시카법 조례를 통과시킨 위스콘신주의 밀워키도 2년 만인 2016년 11월 성범죄 전과 노숙자 수가 15명에서 230명으로 늘었다.

주거 환경이 불안정해진 성범죄자는 쉽게 다시 범죄에 빠졌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2016년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 법무부 연구원이 집행유예 또는 가석방된 성범죄자 1천600명여명을 5년간 추적한 결과, 주거가 일정한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5%지만 그렇지 않으면 20%에 달했다.

당시 연구팀은 "불안한 거주 환경과 성범죄 재범률의 상관성이 높다"고 결론내렸다.

◇ 성범죄자 쫓아내려 편법 난립…'고무줄' 적용도 우려
미국 일부 지역에선 제시카법 시행 후 성범죄자를 다른 곳으로 쫓아내려 편법이 난립하기도 했다.

LA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2015년 로스앤젤레스 하버게이트웨이 지역에서 제시카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자 도심 내 '포켓공원'(도심에 있는 주머니만큼 매우 작은 공원을 가리키는 말)을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시카법상 성범죄자 거주 제한 근거가 공원인 점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제시카법이 성범죄자를 도시 외곽과 길거리로 내모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자가 노숙자가 되면 관리·감독이 더 어려워져 공공 안전에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시카법으로 아버지의 집이 주거 제한 지역에 포함되는 바람에 5개월간 노숙 생활을 한 성범죄자 사례도 보고됐다.

제시카법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한 편법과 출소 후 '마지막 거처'인 가족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는 성범죄자 사례 등은 국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김지선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성범죄자가 주거 제한에 따라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이러면 성범죄자의 사회 복귀가 어려워져 재범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에선 또 법안의 표현과 개념이 모호해 집행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노스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CSUN) 브루스 저커 교수는 2014년 관련 연구에서 주거지를 제한할 때 직선거리로 측정할 것인지, 학교의 개념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지, 아이가 많이 찾는 공원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