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입주가 예정된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평촌 센텀퍼스트' 공사현장. 사진=한경DB
오는 11월 입주가 예정된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평촌 센텀퍼스트' 공사현장. 사진=한경DB
"후분양도, 분양가도 조합에서 정했는데 왜 건설사가 무조건 비난받아야 하는지 억울합니다."

최근 후분양 아파트 단지들의 흥행 실패와 고분양가 논란에 도매금으로 손가락질받게 된 건설사들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을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건설사들이 시공사로 참여하지만, 결국 분양가는 조합이 결정한다"고 호소했다.

9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평촌 센텀퍼스트'는 최근 분양가를 10% 낮춰 입주자를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미분양에 특단의 조치인 할인분양까지 내건 것이다. 지난달 청약에서 1150가구를 모집했지만, 1·2순위에 350개의 통장만 접수되며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흥행실패 요인으로는 '분양가'가 꼽힌다. 평촌 센텀퍼스트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3211만원, 전용 84㎡ 분양가는 최고가 기준 10억7200만원이었다. 주변 신축 아파트보다 1억원 이상 비쌌다. 평촌 센텀퍼스트와 마주한 '평촌더샵아이파크'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9억2000만원(12층)에 거래됐다. 인근 '평촌어바인퍼스트'도 지난달 전용 84㎡가 8억6000만원(7층)에 매매됐다.

더군다나 입주가 오는 11월 예정이다보니 중도금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있다. 행여 분양을 받더라도 수분양자가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기존집을 처분하고 이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분양가 때문에 초기 계약률이 10%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평촌 센텀퍼스트(덕현지구) 재개발 조합은 지난 4일 총회를 열고 분양가 인하를 논의했다. 분양가를 각각 10%, 12%, 14% 낮추는 안을 두고 투표한 결과 10% 인하가 가결됐다. 이에 따라 3.3㎡당 평균 분양가는 2890만원으로 내려왔고 전용 84㎡ 분양가도 9억6480만원으로 기존보다 1억원가량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 시세보다는 높다.
수도권의 한 공사현장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수도권의 한 공사현장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건설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뒤따랐다. 지역커뮤니티 '건설사들이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해왔다', '시공사는 잔치판이었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일부 매체에서는 건설사가 분양가를 더 받으려 후분양을 선택했다가 실패했다는 취지의 보도마저 나왔다.

평촌 센텀퍼스트 시공사인 DL이앤씨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해당 사업을 기성불 방식으로 수주했으며, 분양가 산정 등은 조합의 업무"라고 설명했다. 기성불은 조합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토지비와 공사비 자금을 조달하고 시공사는 공사 진행률에 따라 공사비를 받는 방식이다.

기성불 방식은 수익률이 낮지만, 분양 성적과 관계없이 공사비를 안정적으로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분양가를 높이더라도 건설사의 몫이 늘어나진 않는다. 이와 반대 개념으로는 분양불 방식이 있다. 조합은 토지비와 초기 사업비만 확보하고, 이후 공사비는 시공사가 자체적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건설사가 짊어져야 할 사업 위험이 높아지는 대신 분양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선분양에서 후분양으로 돌아선 것도 조합의 결정이었다. 평촌 센텀퍼스트는 2020년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3.3㎡당 1810만원의 분양가를 제시받았다. 당시 조합은 후분양으로 전환하면 분양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 후분양을 선택하고 3.3㎡당 3211만원으로 분양가를 산정했다.

당시 집값이 상승하던 시기였기에 조합 입장에서는 3000만원 이상의 분양가가 충분하다고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금리인상과 함께 집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이러한 예측은 빗나갔다.

조합은 초기 미분양을 감수하더라도 분양가를 높이는 경향이 강하다. 분양가를 높여 분양 수익이 늘어나면 그만큼 조합원들이 내야 할 분담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부담이 덜어지는 만큼 집행부에 반하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등이 생겨 내분에 휩싸일 우려도 낮아진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에 시공사(건설사)의 브랜드가 붙다 보니 시행사(사업 주체)의 문제더라도 화살은 시공사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파트도 결국은 주문 제작 상품이나 마찬가지인데, 최근 집값 하락 분위기에 싸잡혀서 비판을 받고 있다보니 우울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