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지난달 2일 방호복을 입고 우한에 있는 허베이성 동물질병통제예방센터를 내부에 모여 있다. /사진=AP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지난달 2일 방호복을 입고 우한에 있는 허베이성 동물질병통제예방센터를 내부에 모여 있다. /사진=AP
세계보건기구(WHO)에 주도하는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자문하는 국제 과학자 자문단이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유출될 가능성이 있어 조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WHO와 중국 합동 연구단이 연구실 누출설을 일축한 지 1년여만에 나온 제안이다.

9일(현지시간) 과학자 27명이 참가한 ‘새로운 병원체의 기원 조사를 위한 과학 자문그룹(SAGO)’는 WHO에 제출한 예비보고서를 공개했다. SAGO는 미국, 중국, 독일, 러시아 등 다국적 과학자들이 한데 모인 자문단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SAGO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가 아직 없다”고 분석했다.

실험실 유출설을 검토할만한 데이터가 충분치 않았던 탓이다. 새로운 데이터를 수령하지 못해 추가 조사를 권고한 것. 지금껏 음모론에 머물렀던 실험실 유출설도 가능성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SAGO는 특히 초기 확산지인 중국 우한 인근의 실험실에서 안전·보안 조치를 담당한 직원들을 조사하고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 조작이나 동물 실험 등을 했는지 확인할 것을 제안했다.

SAGO는 구성원 중 러시아, 브라질, 중국 과학자 3명은 WHO 조사팀의 2021년 3월 보고서를 의심할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실험실 유출 가능성 조사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SAGO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어떤 동물에서 비롯돼 어떤 경로로 유입됐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마리에 엔터 SAGO 팀장은 “현재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코로나19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박쥐에서 검출된 바이러스는 인간이 감염된 바이러스와 유사성이 충분치 않다”고 했다.

WHO 관계자들은 SAGO가 제출한 보고서는 예비조사 결과만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SAGO는 자체적으로 연구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기존 연구만 검토하고 있다. 중국 과학자들이 제공한 연구 일부는 아직 발행되지 않아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았으며 SAGO가 연구의 원 데이터를 확인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아직 근거가 부족하지만, 실험실 유출설은 코로나19 기원 논쟁에 활기를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다수가 동물이 기원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은 유출설에 힘을 실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3월 WHO가 직접 조사해서 내놓은 검토 결과를 사실상 뒤집었다. WHO가 코로나19 초기 자국 책임론을 부인한 중국 정부의 해명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는 일각의 비난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SAGO는 중국 당국이 우한에서 나온 초기 확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 등을 요구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2022년 2월 중국 리커창 총리와 마샤오웨이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 주임에게 두 차례 서한을 보내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반발했다. 다시 제기된 중국 실험실 유출설을 자국을 향한 정치 공세로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기원 연구는 반드시 과학적 원칙을 견지해야 하며 정치적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실험실 유출은 전적으로 반(反)중국 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 낸 거짓말로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 기원 규명과 동시에 미래에 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전염병과 그 대유행의 위험에 더욱더 주목해야 한다”며 “원숭이두창, 아동 간염 등에 대한 대응 조처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