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콜택시 운행률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장애인들이 택시를 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서울시가 장애인콜택시 기사를 대상으로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운행 건수와 관계없이 월급이 일정해 기사들의 운행이 줄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서울시 산하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18일 “공단 소속 공무원 신분인 장애인콜택시 기사들의 임금 체계는 공단 보수규정을 따르고 있어 별도 임금체계로의 변경이 어렵다”며 “기사들의 운행 동기부여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행 실적과 연계한 포상금 지급과 인사고과 반영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3월 기준 장애인콜택시 운행 대수는 총 632대다. 서울시에 따르면 장애인콜택시 기사 1인당 탑승 건수는 작년 기준 연 1692회로 2017년(2549회) 대비 33.6% 감소했다. 올들어 지난 7일까지 탑승 건수(42만3615건)를 1년 단위로 환산하면 기사 일 인당 연 1688회 승객을 태운 것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저조했다. 2020년(1342회)에는 2017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반면 장애인들의 택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 3월 대비 이달 콜택시 수요는 20%가량 증가했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유진우씨(26)는 “일주일에 장애인콜택시를 3번 정도 이용하는데 한두시간 대기는 기본”이라며 ““지난주 을지로 입구에서 택시를 불렀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결국 지하철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고 불편을 토로했다.일부 기사들은 미운행버튼을 이용해 콜을 거부하기도 했다. 작년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선 특정 운전원이 미운행버튼을 이용해 2년간 500건의 콜을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운행버튼을 악용한 경우 근무 지시 위반 등으로 징계할 순 있지만 미운행버튼 관련한 구체적인 징계 조항은 없는 상태다.저조한 운행률을 개선하지 않고 기사 증원과 차량 증차에 나서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애인콜택시 한대를 늘리면 보험·수리비 등을 포함해 대당 8000만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된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00% 월급제는 임금이 생산성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공공서비스 수요자인 장애인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공급자인 기사를 보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며 “운행을 얼마나 했는지 등의 성과가 임금에 연동돼야 운행률이 높아지고 장애인들의 편의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
전남 신안의 한 염전에서 장애인들이 10년간 강제 노역을 당한 것이 세상에 알려져 충격을 준 일이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지적장애인이었다. 이들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직업 소개업자의 제안에 넘어가 정당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염전 업주와 직업 소개업자들이 징역과 벌금형을 선고받으며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몇 년 뒤 피해자 중 일부가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염전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전 생활로 돌아간 것이다.이 사건은 장애인들이 노예와 다름없는 상태로 착취당했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었지만, 어렵게 구출된 장애인들이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 더욱 안타까움을 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은 263만3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5.1%로 적지 않은 수다. 하지만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장애인 시설은 2491곳뿐이다.올해 들어서도 염전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는 등 장애인 인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외출하는 것부터 큰 불편을 겪는다. 취업도 쉽지 않다. 신안 염전 사례에서처럼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비슷한 일은 언제든 되풀이될 것이다.이다빈 생글기자(신일여고 2년)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부상자는 약 2314만 명이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은 이보다 참혹했다. 사망자만 5000만~7000만 명일 정도로 인명 피해가 컸다. 부상자는 집계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1억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전쟁 이후 부상자들의 삶은 온전치 못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거동이 불편한 제대 군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항변을 사업 기회로 활용한 인물은 1906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영국에 살았던 버트 그리브스다. 그는 1948년 장애인도 운전할 수 있는 ‘인바카’를 생산했다. 인바카는 잔디깎이 엔진을 탑재한 1인승 초소형 자동차다. 배기량은 147cc에 불과했지만,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장애인이 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동의 자유가 확보됐다. 부상을 입은 군인들은 이를 반겼다. 영국 연금부(보건복지부에 해당)는 인바카를 매입해 부상 군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줬다. 국가에 헌신한 군인들의 이동 복지를 위해 정부가 뛰어든 것이다.인바카는 1970년대 초 500~600cc 엔진을 장착하며 성능을 강화했다. 1977년 영국 정부와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 50가지 이상 제품이 나왔다. 장애인용뿐 아니라 초소형 자가용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안전 문제로 2003년 정부 소유의 인바카를 모두 회수해 폐기했다. 너무 오래전에 개발돼 정부의 충돌 안전 규정을 맞추지 못해서다. 다만 민간 소유의 인바카는 여전히 도로를 운행했다.미국에도 다친 군인이 적지 않았다. 인바카를 눈여겨보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장애인 전용 자동차 사업을 펼쳤다. 팔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차량을 만들어 택시 또는 자가용으로 판매했다.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시기는 1984년부터다. 장애인 이동권이 미국에서 주요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다. 1987년 주로 장애인용 자동차를 개조하는 미국 빈티지 모빌리티인터내셔널(VMI)은 크라이슬러 미니밴에 휠체어 탑승 시설을 장착했다. 바닥을 낮추고 휠체어를 위한 승하차 경사로 시스템을 설치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논의가 더욱 거세지자 미국은 1990년 장애인통과법을 제정해 공공장소 등에 장애인 접근 시설을 의무화했다. 한국에선 국회에 아직 계류 중인 ‘유니버설 디자인 기본법’이 미국에선 이때 통과됐다.영국도 2010년 포괄적 차별금지 법률인 평등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택시와 렌터카는 장애인을 위한 탑승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했다. 장애인의 이동·여행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영국 택시는 모두 장애인·비장애인 겸용으로 전환됐다. 이용자 대부분은 비장애인이지만, 장애인도 길에서 손 흔들고 택시를 잡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장애인의 경제적 활동이 늘었다. 영국 정부는 운영하던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없애고, 운영 비용을 장애인의 택시 요금 지원에 활용했다. 예산 절감과 기본 이동권 확보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이다.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