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례자가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총 길이 800㎞의 험난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한 순례자가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총 길이 800㎞의 험난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길은 인간이 걸어온 역사가 숨겨져 있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순례길부터 인간의 한계를 가늠해보는 험난한 길, 눈부신 풍경이 일품인 바다길까지 세계에서 이름난 트레킹 코스를 소개한다.

내적인 평화 느낄 수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킹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연간 30만 명이 찾았다. 유럽의 여러 곳에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약 800㎞에 이르는 길이다. 목적지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카미노 데 프란세스(프랑스 사람들의 길)’이라고 불리는 코스다.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피데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진다.

11∼15세기에 번성했던 이 순례길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쇠퇴했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는 최초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87년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가 출간된 이후 유명세를 타면서부터다. 199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신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자는 대부분 트레킹과 흥미를 위해 찾는다. 종교적인 순례의 의미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이 길을 걷기 위해 온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같이 800㎞나 되는 길을 걸으며 친목을 다지고 내적인 평화를 찾기 위한 것이다.

완주까지는 짧게는 30일에서 길게는 40일 정도 걸린다. 카미노 데 프란세스는 피레네산맥의 우거진 숲과 스텝 평원, 깊은 계곡과 뾰족한 산맥 등 스페인 북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마다 ‘알베르게’라고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가 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왕의 길’ 쿵스레덴

스웨덴 북부의 아비스코에서 남쪽의 헤마반까지 440㎞에 달하는 쿵스레덴(Kungsleden) 트레킹 코스는 전 세계 트레커들에게 꿈의 장소다. 쿵스레덴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킹스 로드(King’s Lord)’다. 즉 ‘왕의 길’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궂은 날씨, 돌무더기 지대와 오르막길 코스 등 극한의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트레커들에게 매력적이다.

트레킹 코스 중 하이라이트는 니칼루옥타(Nikkaluokta)에서 아비스코(Abisco)에 이르는 110㎞ 코스다. 모든 음식을 직접 해먹고 야외 취침까지 감행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사람이 살기엔 척박한 야생의 땅에 조성된 트레일로 연중 6월부터 9월까지 열린다. 백야를 즐기고 눈 덮인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며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다. 스웨덴 최고봉인 케브네카이세부터 싱이까지는 거대한 산들로 둘러싸인 골짜기를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 친퀘테레

800㎞의 거대한 쉼표…혼자 걷다, 나를 찾았다
이탈리아 친퀘테레 트레킹 코스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혹적인 걷기 길이다. 다섯 개의 땅을 의미하는 친퀘테레는 몬테로소알마레,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등 다섯 마을로 이뤄져 있다. 해안 절벽의 좁은 틈을 파고들어 형성된 마을들은 오랫동안 고립돼 있었고, 산악지형이어서 해안도로가 매우 좁다. 마을과 마을 간 거리는 2~3㎞에 불과하지만 트레킹 코스는 내륙으로 우회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트레킹 코스로 명성이 높다. 짙푸른 바다와 파스텔톤 집들 속에 다양한 상점과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를 만나볼 수 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