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실리콘밸리 삼성이 초일류 되려면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는 한국인을 만나면 종종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삼성전자에서 좋은 조건으로 이직 제의가 오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위상과 고액 연봉, 고국 근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장점이 많은 훌륭한 기업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후의 내용은 개인의 사정이나 그가 속한 회사에 따라 다양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삼성전자 특유의 조직 문화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주로 하드웨어를 중시하고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소홀히 하는 분위기, 지나친 하향식 의사 결정, 치열한 단기 실적 경쟁, 외국계 기업 출신에 대한 견제 등이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단기 실적 중시하는 문화

기우는 아닌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서 큰 기대를 안고 삼성전자로 갔다가 회사 문화에 크게 실망한 전 직원들의 후일담을 듣는 건 어렵지 않다. 글라스도어(glassdoor) 같은 미국의 기업 리뷰 사이트에서 삼성전자의 주요 단점으로 ‘매우 독특한 문화(very unique culture)’가 꼽힐 정도다. 이 때문에 ‘진짜 실력자’가 아닌, 삼성전자를 ‘경력 정거장’으로 활용하려는 검은 머리 외국인만 줄을 서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 특유의 문화는 기업 경쟁력에도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과거 삼성이 추격자 위치에 있을 땐 한국적인 조직 문화가 도움이 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위치에선 오히려 조직의 활력과 유연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는 게 최근 불거진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관련 논란이다. GOS는 스마트폰에서 고성능 게임 등을 실행할 때 반도체의 과열을 막기 위해 화면 해상도 등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기능이다. 소비자들은 “삼성전자가 GOS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스마트폰 성능에 대해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일각에선 GOS 사태를 들며 ‘기술력의 위기’를 말한다. 애초 칩의 발열이 심하지 않았다면 GOS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단기 실적을 중시하고 목표 달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기업 문화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조직의 유연성 더 높여야

삼성전자가 경쟁자로 꼽는 애플은 다르다. 최근 애플은 PC 두뇌 역할을 하는 ‘M1맥스’ 칩 2개를 이어 붙인 ‘M1울트라’를 출시했다. 고성능 칩 2개를 붙여 최고의 성능을 낸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애플은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M1울트라를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개발자들을 믿고 기다렸고 기술이 완벽해지자 비로소 외부에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글로벌 일류’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숫자로 표시되는 실적에선 충분히 성과를 냈다. 하지만 요즘 경영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초(超)격차’ 같은 구호보단 임직원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경영 철학과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 직원들에겐 비전과 희망을 심어주고 임원들에게는 호흡을 길게 가져갈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 제2의 GOS 사태를 방지하고 구글 애플 등 ‘초일류’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