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20일 SETEC에서 열린 2022 화랑미술제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  한국화랑협회  제공
지난 16~20일 SETEC에서 열린 2022 화랑미술제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 한국화랑협회 제공
지난 16일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2022 화랑미술제’ VIP 개막 5시간 전부터 행사장 앞에 낚시의자가 하나둘 늘어섰다. 선착순 판매하는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 모여든 컬렉터와 ‘줄서기 알바’들이었다. 오후 3시 개막 이후 오후 8시까지 4000여 명의 관객이 몰리면서 건물 앞 도로는 마비 상태에 빠졌고, 주차하는 데에도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이날 판매된 작품 총액은 45억원. 관람객 한 명당 100만원 이상을 쓴 셈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미술시장 호황이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올해 미술시장 흥행 가늠자로 주목받은 화랑미술제가 20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총판매액은 전년 대비 2.5배 수준인 177억원, 관람객은 5000명 늘어난 5만3000명을 기록하며 지난해의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줄서기와 ‘오픈런’(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 등 전에 없던 현상도 생겼다.

“가져온 작품보다 많이 팔았다”

72억→177억 판매…화랑미술제 '거침 없는 질주'
이번 행사에서도 거장의 대형 고가 작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첫날부터 국제갤러리가 내놓은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작품이 4억2000만원가량에 새 주인을 찾았고, 갤러리현대가 출품한 이강소의 작품은 2억원에 팔렸다. 조현화랑에서도 이배와 김종학의 작품이 인기리에 판매됐다. 우국원과 장마리아 등 최근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들의 작품도 개장 직후 모두 팔렸다.

2030세대 컬렉터 비율이 급증하면서 중견·신진작가의 수백만원대 작품이 특히 각광받았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컬렉터를 겨냥해 소품이나 중저가 작품을 중점적으로 출품한 곳이 많았다”고 전했다. 선화랑은 이영지 이길우 등 중견작가들의 작품 20여 점을 판매했고, 가나아트가 내놓은 김구림과 문형태 등 유명 작가 소품들도 완판됐다. 화랑협회가 유망 작가 7명을 뽑아 작품을 선보인 신진작가 특별전 ‘줌인’에서도 오지은과 이상미의 작품이 팔리는 등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았다.

가져온 작품보다 훨씬 많은 그림을 판매한 갤러리도 있었다. 갤러리나우는 출품작 수보다 20여건 많이 판매 계약을 맺었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는 “고상우 작가의 ‘밤눈’ ‘달빛’은 출품한 작품과 동일한 에디션이 여럿 팔렸고, 김소형의 작품은 출품작과 같은 크기로 추가 주문을 5건 받았다”며 “작가에게 부담을 줄까봐 예약을 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산갤러리는 윤필현 작가의 작품 11점을 모두 판매한 뒤 15점을 추가로 예약받았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과열 우려도

미술계 한편에서는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유력 화랑 관계자는 “2030세대 신규 컬렉터들이 중저가 작품을 여러 점 구매하는 사례는 늘어난 반면 중고가 이상 작품의 수요나 기존 컬렉터의 구매 등은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며 “신규 컬렉터 중 상당수가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데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화랑가에서는 아직 낙관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술시장 규모가 주요국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는데, 이제 문화 저변이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며 “올해 미술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세 배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