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韓, 제2 외환위기 우려와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지속되면서 취약국을 중심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달러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 배제, 국가신용등급 추락, 글로벌 벤치마크지수 탈락, 외환 보유와 금융거래 금지 등 모든 국제금융시장 접근이 막히면서 러시아는 1998년에 이어 선언 직전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최고통수권자가 중앙은행까지 장악해 포퓰리즘적인 모라토리엄 통화정책을 추진해온 터키 상황은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서든 스톱’, 즉 급작스러운 외자 이탈에도 기준금리를 500bp(1bp=0.01%포인트) 내린 후폭풍으로 물가가 살인적으로 올라감에 따라 추가적인 외자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전형적인 금융과 실물 간 악순환 고리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韓, 제2 외환위기 우려와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 참여로 심각한 부채에 시달려온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로 평가해 보면 이미 외환위기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제 내부에서도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

현재 학계를 중심으로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 대학 교수는 국제결제은행(BIS) 권유대로 외환보유액이 9000억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수준의 두 배 정도로 더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책당국에서는 외환보유액에 특별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정국의 외환 보유가 무한정 많을 필요는 없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외화를 더 유용하게 쓸 곳이 많아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 외환보유액도 절대적인 기준이 못 된다.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제2선 자금 확보와 외환 보유 구성에서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가용 외화를 많이 가져가면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된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1990년대 이전처럼 경상거래가 많을 때는 3개월 수입분을 가져도 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의 개념과 그 후 자본거래가 많아지면서 나온 기도티·그린스펀의 광의 개념, 그리고 투기적인 거래가 늘어나면서 캡티윤의 최광의 개념까지 확장돼 왔다. 세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외환보유액은 직접 갖고 있는 제1선 외화만 따지더라도 문제가 없다.

외환위기를 한 번 경험한 우리로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IMF가 새롭게 제시한 적정 외환보유액 개념이다. 금융위기 방지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계기로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시중 통화량(M2)의 5% △유동 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잔액의 15%를 합한 규모의 100∼150%를 쌓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개념으로 보면 우리는 2020년부터 100% 밑으로 떨어져 외환 보유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최근 한국 내부에서 외환보유액 적정성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교훈’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일 정도로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 놓았더라도 최고통수권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갈라파고스 함정(외딴섬)에 빠지면 모라토리엄에 몰리기 때문이다.

다음달 세계 3대 평가사의 정례심사를 앞두고 ‘외환보유액이 많다, 적다’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 달라는 서방 측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 3월 9일이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글로벌 흐름에 맞춰 왜곡됐던 대외경제정책상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다른 신흥국이면 몰라도 한국의 경우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에 편승한 ‘제2의 외환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데믹, 즉 잘못된 정보에 해당한다. 나라 안팎으로 극도로 혼란할 때 새 대통령이 탄생하는 만큼 이제는 모두가 ‘프로보노 퍼블리코(공공선) 정신’을 발휘해 위기에 대처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