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5년째 희망고문 당하는 암환자들
딱 보름 전인 지난 2일은 꽤 많은 암 환자들이 손꼽아 기다린 날이었다. 이날 열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서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와 스위스 노바티스의 킴리아가 통과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키트루다는 항암화학요법만 쓸 때에 비해 폐암 4기 환자의 생존 기간을 두 배 늘려주고, 완치 가능성도 높여주는 ‘기적의 치료제’다. 킴리아는 모든 치료에 실패해 수명이 3~6개월 정도 남은 말기 거대미만성B세포림프종 환자 열 명 중 네 명의 몸에서 암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면서 ‘꿈의 항암제’란 별명을 얻었다.

이런 ‘명약’ 값이 뚝 떨어진다는 소식에 환자와 가족이 흥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건보에 등재되면 환자 부담금이 5%로 떨어지는 만큼 연간 1억원가량 드는 키트루다는 500만원에, 치료 한 번에 5억원이 소요되는 킴리아는 대략 2500만원에 처방받을 수 있다.

날아가버린 '꿈의 항암제'

하지만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날 열린 올해 마지막 약평위에서 두 치료제 모두 심사 대상에 못 올랐기 때문이다. “경제성평가 검토가 덜 됐다”는 게 이유였다. 어떤 환자는 울었고, 어떤 환자는 화를 냈다. MSD가 신청한 게 2017년 9월인데 아직도 검토하는 게 말이 되냐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암환자를 상대로 5년이나 ‘희망고문’하고 있다”는 격한 반응도 나왔다. 킴리아도 마찬가지다. 심평원 심사는 5개월 안에 끝내는 게 원칙이지만, 킴리아 관련 서류는 10개월이 다 되도록 심평원에 묶여 있다.

심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보 등재는 늦어지고, 건보 살림에 보탬이 된다. 안 그래도 ‘문재인 케어’ 등의 여파로 건보 적립금은 2017년 20조7733억원에서 지난해 말 17조4181억원으로 쪼그라든 터다. “심평원이 건보 재정 을 생각해 일부러 질질 끄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장 이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치료 효과는 떨어지지만 값싼 ‘옛날 약’과 효과는 좋지만 너무 비싼 ‘신약’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유전무병 무전유병(有錢無病 無錢有病)”, “암으로 죽지 않으면 약값으로 죽는다”는 환자들의 절규를 끊으려면 제약사가 약값을 대폭 내리거나 건보에 빨리 올리는 방법뿐이다. 약값을 대폭 끌어내리는 건 쉽지 않다. 신약 개발은 수조원의 자금과 10~15년의 시간을 들여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데, 정부가 저가 판매를 강제하면 향후 도전하는 기업이 나올 리 없다.

'유전무병 무전유병' 없애려면

현실적인 해법은 혁신 신약을 건보에 빨리 올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효과는 별로인데 값만 비싼 약까지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걸 깐깐하게 걸러내는 게 심평원의 존재 이유다.

‘선등재-후평가’는 이런 점에서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한시가 급한 중증환자용 치료제만이라도 먼저 건보 혜택을 준 뒤 나중에 비용효과 평가를 해 최종 건보 적용 약가를 정하고, 차액을 정산하는 시스템이다. 이래야 35%에 불과한 한국의 신약 접근성을 미국(87%) 독일(63%) 일본(51%)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는 지난 3월 제4차 암관리 종합계획을 통해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다섯 달 뒤 문재인 대통령은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넉 달 뒤 키트루다는 심사에서 미끄러졌다. 그즈음 폐암환우회 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키트루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많은 국민이 좋은 신약 쓰기를 기다리다 죽어간다. 도대체 건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