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땜질방역'의 필연적 귀결
“자식이 입원했는데, 병실을 알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김부겸 국무총리의 홍남기 부총리 두둔은 ‘부적절했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허벅지 통증을 이유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아들을 위해 병원장과 통화하고, 결국 아들이 1인 특실에 2박3일간 입원한 일을 두고 한 두둔 말이다.

홍 부총리의 처신이야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앙재난안전본부장 김 총리의 발언은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얘기였다. ‘방역 책임자가 현장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해 그렇다.

사실상 붕괴된 응급체계

현 응급실 실상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연일 사상 최다를 경신하는 확진자는 ‘숫자’일 따름이다. 하지만 의료진의 체감은 완전히 다르다. 응급체계는 이미 허물어졌다. “확진자가 아닌 응급환자 중 열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음압격리실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격리실이 매일 꽉 차 있어 아무리 급한 환자여도 돌려보낼 때가 많아요. 119를 통해 심정지가 오는 환자가 이동 중이라는 연락이 와도 ‘지금 받아도 되나’ 걱정부터 하게 되죠.”

지방자치단체 고위공무원의 이런 걱정은 어떤가. “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병상을 확보한다지만, 의료 인력은 어떻게 확충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희생만 강요할 수 없지 않습니까. 금전적 보상을 충분히 해줘야 할 텐데, 올해 나랏빚이 100조원을 넘었으니 재정 여력이 있을지….”

현실은 이렇듯 난장판이다. 그런데도 김 총리는 평상시라도 통할까 말까 한 소리를 한 것이다. 번아웃 직전의 일선 의료진과 공무원이 분노를 넘어 절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 가까이 이어진 이른바 K방역의 본질은 ‘탁상머리·땜질 방역’과 다를 바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치명률(아워월드인데이터 기준 1.62%)이 올해 중반 있었던 백신 공급난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정부는 백신 확보가 늦어지는 데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모더나·화이자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부랴부랴 확보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차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8주인 1·2차 접종 간격을 11주로 늘리는 ‘분식’을 감행한 것은 대체 누구의 결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때 AZ 백신을 맞은 고령층의 항체 효과 감소가 치명률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중증화율을 잘못 추산해 병상 대란을 자초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땜질’이 어디 방역뿐일까. 뭉개기로 일관하다 ‘요소수 대란’으로 이어진 공급망 다변화, 대출 죄기 같은 미봉책으로 집값을 억누르려 하는 부동산 정책의 본질이 방역과 다르지 않다.

'과학'을 '정치'로 푸는 일 없어야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아 수술할 생각은 않고 변죽만 울리는데, 결과라고 다를 리 없다. “경제는 과학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치”(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라는 식의 발상으로는 해결이 요원할 뿐이다.

최근 우리나라 상황을 전한 기사가 일본 현지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한 일본 네티즌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국민을 눈속임할 수는 있겠지만, 바이러스까지 속일 순 없는 법이지.”

코로나19 사태는 국정이 과학이 아니라 정치에 휘둘릴 때 그 결과가 어떤지를 새삼 일깨웠다. 다음 정부가 깊이 새겨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국민은 이 ‘상식’을 체득하는 데 영문도 모른 채 너무 큰 희생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