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서 전편 공개…'오징어 게임' 흥행 이을까
재난영화 공식으로 그려낸 연상호의 디스토피아 '지옥'
지옥에서 온 사자(使者)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그리고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19일 넷플릭스 새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편이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초자연적 현상과 종교라는 소재로 풀어내며 디스토피아의 정점을 그려냈다.

무작위로 벌어지는 인간의 죽음, 그 두려움을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분출하는 사람들, 그들에 맞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작품의 전개 방식과 메시지는 기존 재난 영화의 기초 공식에 충실한 모습이다.

재난영화의 틀 안에서 그려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사실적인 모습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종교의 발현 과정은 '지옥'을 특별한 작품으로 만든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총 6편, 약 300분의 길이의 영상에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공포와 그 두려움을 타인에 대한 단죄와 폭력으로 표출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원작 웹툰 속 장면 또한 대부분 높은 싱크로율로 구현해내 원작 팬들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영화 '부산행', 드라마 '방법' 등을 통해 끊임없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폭력성을 그려낸 연상호 감독은 '지옥'을 통해 재난을 만드는 것도, 그 재난을 끝내는 것도 모두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재난영화 공식으로 그려낸 연상호의 디스토피아 '지옥'
이야기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극도로 초조해하는 한 남자에게 지옥의 사자들이 찾아오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내던져진 남자가 새까맣게 불타버린 뼛조각만 남기고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정진수(유아인 분)는 자신의 지옥행 선고 사실을 숨긴 채 새진리회라는 종교 단체를 만든다.

그는 괴현상을 '신의 뜻'이라고 말하고, 지옥행을 선고받은 이들을 '죄인'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사법제도를 비롯한 모든 사회체계가 새진리회의 교리와 법칙 아래 놓이게 되면서 그 뜻을 받들며 정의구현을 외치는 단체 화살촉의 기세는 더 커져만 가고,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재난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한순간에 '죄인'의 가족으로 살게 된 사람들, 화살촉의 무자비한 폭력에 당한 이들은 민혜진(김현주)을 주축으로 한 비밀조직인 소도를 결성하고 새진리회가 만들어낸 인재(人災)를 멈추기 위해 맞서 싸운다.

급작스러운 지옥행이라는 초자연적 재난과 이를 마주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재앙이 동시에 등장하는 이 작품은 재난영화에서 볼 수 있는 클리셰를 적절하게 변주하며 시청자들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재난영화 공식으로 그려낸 연상호의 디스토피아 '지옥'
작품은 전반은 새진리회의 부흥과 디스토피아의 본격적인 시작을, 후반은 지옥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에 균열을 내는 소도의 이야기가 담기면서 좀처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극의 중반 화살촉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죽음의 문턱에 섰던 김현주의 변신이 눈길을 끈다.

전반부에서는 드라마 '언더커버' 속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보였다면, 민혜진이 소도의 리더가 된 후에는 시원시원한 액션과 함께 강인함을 내뿜으면서도 새진리회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을 안정적으로 표현해냈다.

또 4회부터 등장하는 배영재 역의 박정민과 송소현 역의 원진아는 각각 가족을 지켜야만 하는 한 남자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기의 지옥행 선고를 마주한 엄마의 복잡한 심경을 유연하면서도 묵직하게 소화해냈다.

재난영화 공식으로 그려낸 연상호의 디스토피아 '지옥'
'지옥'은 공개 전부터 토론토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오징어 게임'을 이을 최고 기대작으로 꼽혀온 만큼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작품 모두 인간에 내재한 본성이 분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소재와 배경,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등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오징어 게임'이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공간 속에서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그려냈다면 '지옥'은 인간이 불가항력의 재난을 마주한 상황을 설정하고 '사람'과 '사회'에 보다 초점을 맞춰 파고든다.

또 '오징어 게임'이 선명한 색감과 거대한 규모로 시청자를 압도했다면 '지옥'은 어둡고 차분한 배경으로 배우들의 표정과 눈빛에 시청자들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달고나 등 한국적인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오징어 게임'과 달리 그 어디에서도 명백하게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 없지만 지극히 한국적으로 느껴지는 '지옥'이 K드라마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