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진실이 전진하고 있다
놀랍고 고무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엊그제 나왔다. 무려 10명 중 8명이 전 국민 지원금 추가 지급에 반대했다. 5명은 아예 ‘지원금이 불필요하다’고 했고, 3명은 ‘취약계층에만 주자’고 했다. 100만원(4인 가족 기준) 정도의 공돈이 생기는데도 찬성은 22%에 그쳤다. 놀라운 민의에 경외감마저 든다. 다른 여러 여론조사도 대동소이하다.

더 이상 안 먹히는 궤변과 선동

거대 여당은 대선후보까지 나서서 “국가부채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바람을 잡았다. 하지만 국민은 텅 비어가는 나라 곳간 사정과 ‘용돈 경제’의 작동 불가능을 이미 깨치고 있었다. 다소 과장해서 해석해보면, 궤변의 시간이 끝나고 진실의 순간이 도래한 느낌이다.

돌아보면 작년 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1심 재판이 큰 분수령이었다. 당시 임정엽 부장판사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며 4년 징역형을 내렸다. 단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법정 증언을 한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비난까지 한 정 교수의 허위와 부도덕을 직격했다.

지난여름의 김경수 경남지사 ‘드루킹 댓글’ 재판도 진실투쟁이었다. 애초 법조계는 이 사건을 판사가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 없는 ‘빼박 재판’으로 봤다. 증거가 가리키는 사실들이 워낙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권 실세’는 “진실의 힘을 믿는다” “진실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며 끝까지 진실 타령을 했다. 여당과 소위 ‘진보네트워크’의 총공세에도 이동원 대법관은 소신 판결로 진실을 확정했다.

이런 변화가 오기까지 지식인들의 지난한 저항이 있었다. 신재민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적자국채 편법 발행을 지시한 청와대와 부총리의 요구를 폭로하고 직을 던졌다. 김경률 회계사는 ‘정권 2중대’로 전락한 참여연대를 고발하며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 불법을 파헤쳤다. ‘가짜 적폐몰이’에 맞서 모든 것을 던진 이재수 기무사령관도 ‘진실 투사’였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힘을 보탠 6000여 명의 정교모 교수들, 인권과 민주주의 지킴이를 자처한 자변·한변 변호사들의 헌신도 있었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연대도 돋보였다. 노무현재단 직원 김하니 씨는 ‘대통령의 복심’ 윤건영 의원이 차명계좌로 국회 돈을 빼돌린 정황을 폭로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지만 양심의 소리에 따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거처인 ‘나눔의 집’ 직원들도 회계부정과 할머니들의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며 위선을 저격했다. 공지영 조국 유시민 등 ‘탈진실’ 스피커들의 행동반경이 크게 쪼그라든 배경이다.

선민의식에 저항하는 시민들

아직 까발려야 할 진실이 태산이고 갈 길은 멀다. 파탄난 ‘소주성’은 재정만능주의와 토지공개념으로 간판갈이를 하고 호시탐탐 복귀를 준비 중이다. 기업가와 지식인, 먼저 부자가 된 이들은 여전히 착취자라는 주홍글씨에 갇혀 있다. 나라 밖에서는 김정은의 평화공세와 시진핑의 중국몽이 ‘진실 코스프레’ 중이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다.” 드레퓌스 대위를 반역죄로 가둔 조국 프랑스의 인종주의·국가주의를 고발했던 에밀 졸라의 낙관이다. 그는 지독한 고난을 겪었지만 진실에 몸을 맡긴 덕분에 승리했고, 프랑스는 업그레이드됐다.

120여 년 전의 프랑스처럼 요즘 한국에선 ‘진보’의 선민의식, 연성(軟性) 국가주의가 넘친다. 사익을 절제하고, 탈진실에 저항하는 시민의 발견이 더없이 듬직한 이유다. 전체주의의 본성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조지 오웰은 ‘거짓말이 판칠 때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이라고 했다. 폭주하는 위선에 태클을 거는 것이 오늘의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