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시 같은 피아노 전주곡…쇼팽 음악성 알리고 싶었다"
1838년 스페인 마요르카에 머물던 프레데리크 쇼팽은 최악의 나날을 보냈다. 결핵은 갈수록 심해져 기침을 하면 손수건에 피가 묻어나왔다. 비가 쏟아지던 날, 그는 연인 조르주 상드를 기다리며 곡을 썼다. 후대 음악가들이 왼손 반주가 마치 빗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빗방울 전주곡’이라고 이름한 작품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오선지에 옮겼던 쇼팽을 피아니스트 박종화(47·사진)가 재현한다. 오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음악회 ‘Rediscovery(재발견)’에서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전곡(24곡)과 ‘연습곡 op.11’ 전곡(10곡)을 한자리에서 들려준다.

박종화는 여섯 살 때 일본 도쿄음악대 영재반을 수료했고, 열두 살에는 마이니치콩쿠르에서 우승해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스무 살 때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콩쿠르에서 최연소 입상했다. 2007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며 각종 음악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섬집 아이’ 등 동요를 연주한 ‘누나야’를 발매하기도 했다.

전주곡은 본래 연주자들이 메인 프로그램 연주에 앞서 손을 풀려고 쳤던 곡이다. 음악회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서곡과 비슷하다. 피아노에만 집중한 쇼팽은 전주곡에 자신의 음악성을 담았다. 박종화는 “길이가 짧고 구조도 단순하지만 쇼팽의 예술성이 녹아있는 작품”이라며 “단편 시 같은 전주곡들로 그의 음악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악회 제목을 ‘재발견’이라고 한 것도 19세기의 쇼팽을 21세기에 다시 보기 위해서다. 그는 쇼팽이 결핵을 앓았던 탓에 전주곡에 죽음의 형상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죽음, 사라짐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유럽에서 유학할 때의 경험도 한몫했다. 70대 하숙집 주인이 밥 먹는 자리에서 죽음에 대해 논하자고 하면 그는 마음이 불편해 화제를 돌렸다. 당시엔 너무 먼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가장 확실한 미래가 죽음인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쇼팽의 ‘에튀드(연습곡)’도 연주한다. 음대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친 지 15년째. 학생들이 주로 연주하는 연습곡을 공연 프로그램으로 고른 이유는 뭘까. 박종화는 “한동안 쇼팽이 지닌 섬세함을 등한시했는데, 이번 무대를 통해 연습곡이란 장르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었다”며 “쇼팽 에튀드를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동작이 이어진다. 기교는 물론 쇼팽의 재치도 담긴 곡”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