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미리 받아 놓으려는 ‘가수요’가 폭발했다.
"일단 받고 보자" 8월 은행 주담대 4조 늘어
지난 8월 마지막 주 2영업일(30~31일) 동안 5대 은행에서 새롭게 개설된 마이너스통장 수만 무려 5000개를 넘어섰다. 주요 은행이 9월을 기점으로 일제히 신용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기로 한 여파다. 주택담보대출도 8월 한 달 새 4조원 넘게 불어나 올 들어 월 단위로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일부 은행이 부동산 대출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패닉 대출’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에다 대출 규제 강화로 은행 문턱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담대 올 들어 최대 폭 증가

1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8월 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18조4782억원으로, 전달보다 4조2055억원 늘었다. 이는 지난해 11월(4조6001억원)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매달 평균 2조2300억원 수준이었는데, 지난달에는 한 달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었다.

이 같은 급증세의 배경에는 ‘대출 절벽’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다는 평가다. 앞서 농협·우리은행 등이 신규 주택 관련 대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자 실수요자 사이에는 ‘일단 받고 보자’는 심리가 확산됐다. 서울 마포구 소재 한 은행 지점 관계자는 “일부 은행의 대출 중단 관련 소식이 전해진 이후 대출 상담 고객이 부쩍 늘었다”며 “기존에 세워 놨던 자금 계획을 앞당겨 대출을 신청하는 고객도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마이너스통장 65% 급증

패닉 대출 행렬은 마이너스통장으로도 이어졌다. 농협은행의 대출 중단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달 20일 이후 31일까지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 건수는 총 1만8920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2365건으로, 19일까지 평균 개설 건수(1437건)에 비해 65% 급증했다.

9월부터 대부분의 은행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각각 연 소득 이내, 5000만원 이하로 대폭 축소하면서 8월의 마지막 영업일이었던 30~31일 단 이틀 동안 5329개가 새로 개설됐다. 한 은행에서는 31일 하루에만 1000개가 넘는 마이너스통장이 신규 발급되면서 올 들어 최대 기록을 세웠다. 금융권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은 새로 만들어도 돈을 꺼내 쓰지 않으면 당장 이자가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수요를 가장 즉각적으로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는 “집값이 크게 올랐는데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은 점점 받기 어려워지니 마이너스통장으로 급히 충당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어떻게든 생활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실수요자들이 패닉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대출 규제, 실수요자에 직격탄”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출 절벽이 더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불어난 가계대출이 집값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대출 규제를 더 강화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지난달 31일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부채 대응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은행들은 총량 규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한도 축소, 금리 인상 등 대출 문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심 교수는 “미리 대출을 받아 놓은 사람도 은행이 만기 연장을 할 때 이자율을 올리거나 한도를 줄일 것”이라며 “총량 규제의 직격탄이 실수요자를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