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실적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사회적 가치’ 창출이다. 취임 일성도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미국 대형 고객사에 납품 물량을 늘린 게 대표적 사례다. 이 사장은 2019년 미국 출장 때 유난히 제품 인증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댔던 A사를 방문했다. A사 경영진은 사업 현안을 꺼내지 않고 화제를 빙빙 돌렸다. A사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에 적극적이란 걸 알고 있었던 이 사장은 자연스럽게 SK의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대화를 풀어갔다.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던 A사 관계자들은 그제야 관심을 보였다. 미팅 후 어려움을 겪던 제품 인증이 빠르게 해결됐고 A사에 대한 메모리 반도체 공급량도 크게 증가했다.

이 사장은 SK하이닉스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는 철학도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창립기념사에서 “SK하이닉스는 사회와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중 환경 분야는 이 사장이 특히 꼼꼼하게 살피는 이슈다. 성과도 있다.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던 이 사장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B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이 B사의 지향점임을 강조했다. 이 사장은 “SK하이닉스가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B사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SK하이닉스의 저전력 메모리 반도체를 B사가 쓰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후 SK하이닉스는 B사의 지속경영 활동 관련 핵심 파트너로 선정됐다.

SK하이닉스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달 3일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RE100’에 가입했다. RE100은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이 사장은 이 같은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SK그룹의 ‘2020 CEO 세미나’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를 발표했다. 이는 고객,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회사의 성장 전략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 총체적 가치를 높이는 SK그룹 차원의 경영 전략이다. 이 사장은 “단단한 사업 포트폴리오와 고객을 위한 사회적 가치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