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린뉴딜이 도입되고 주주행동주의가 강해지면서 사회적책임투자(SRI)가 요구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주요 대기업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국민연금 등 기관들도 ESG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주력 사업을 잘 키우면서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는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ESG 40조달러 돌파

20일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글로벌 ESG 투자자금은 지난 2분기 말 40조5000억달러(약 4경4530조원)를 돌파했다. 이 가운데 ESG 기업에만 투자하는 ESG 상장지수펀드(ETF) 규모는 880억달러까지 커졌다. 6개월 만에 작년 580억달러(ETF 기준)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연기금, 운용사 등 큰손들이 ‘네거티브 스크리닝’ 방식으로 투자를 집행하면서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이란 ESG 관점에서 부정적인 기업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ESG에 역행하면 투자금 유치도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7조달러(약 7690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운용 기조는 이런 분위기를 나타내준다. 블랙록은 총매출의 25% 이상을 석탄화력 생산·제조에서 벌어들이는 기업을 올해 주식·채권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했다. 이와 함께 이사회에 여성이 2명 미만인 기업도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달 국민연금도 2022년까지 전체 자산의 50%를 ESG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ESG가 D등급인 종목은 내년부터 벤치마크 대비 비중을 초과해 편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SK 주목

한국 증시에서도 ESG 역량이 탁월한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물산과 SK그룹 관련주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기업은 실적도 성장세면서 ESG 경영까지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지난 10월 석탄 관련 신규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진행 중인 사업도 단계적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강화하고 ESG의 3대 요소인 지배구조도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업가치 제고와 배당 확대가 예상된다”며 “소액주주도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는 한국 기업 최초로 ‘RE100’(205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을 공식화했다. 계열사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SKC는 지난 14일 울산에 국내 최대 규모 친환경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폐플라스틱을 분해해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주주가치(배당)가 우수한 기업으로 삼성전자, 현대차, 한온시스템, 현대모비스, SK, 두산밥캣 등을 꼽았다. 성장과 ESG를 동시에 잡은 기업도 있다. 매출이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 기업으로 신세계, LG전자, 오리온, 매일유업, 호텔신라, SK, 한온시스템 등이 거론된다.

ESG 펀드도 높은 성과

펀드를 통해 ESG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ESG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SRI펀드에 들어오는 자금도 많아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3개월 SRI펀드에 3100억원이 순유입됐다. 국내 SRI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연초 이후 20.78%를 기록했다. 이는 다른 테마펀드인 가치주(수익률 14%) 공모주펀드(8.94%) 금펀드(22.83%) 등보다 높은 수준이다.

마이다스책임투자펀드는 올해 43% 이익을 거두고 있다. 삼성착한책임투자펀드는 올해 30.1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글로벌 ESG 펀드로는 뱅가드ESG인터내셔널스탁ETF, 아이셰어즈ESG어웨어MSCI USA ETF 등이 있다. 뱅가드ESG인터내셔널스탁ETF는 10월 초 대비 16.9% 올랐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 SRI펀드에 대한 전망이 밝아지면서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