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53일 만에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엄수…이재갑·김현미 장관 참석
'생활 속 거리 두기' 따라 절차 최소화…유가족마다 개별 장례 치를 예정

"거기 있으면 어떡해, 거기 있으면… 보고 싶어도 못 보잖아 이제."
고령의 어머니는 한참을 오열하며 영정을 향해 뻗은 손을 거두지 못했다.

근조 리본을 단 어린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아빠의 영정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보고 싶어도 못보잖아"…눈물바다 된 이천물류창고 참사 영결식
줄지어 놓은 38개의 영정 사진 속 아들과 아버지들은 저마다 미소를 띤 다부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진 속 모습으로만 남게 된 이들이 가족의 부름에 답할 방법은 없었다.

사고 이후 한 달이 훌쩍 넘게 흘러간 시간을 보여주듯 영정 주위로 놓였던 조화는 이미 생기를 다하고 갈색으로 시들어 유가족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경기 이천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 화재로 목숨을 잃은 38명 희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합동 영결식이 20일 오전 10시 이천 서희 청소년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지난 4월 29일 사고 발생 53일 만이다.

이날 행사는 묵념과 경과보고, 추모사 및 추모 편지 낭독, 헌화, 영정 및 위패 전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우려한 유가족들의 당부에 종교 및 제례 행사는 모두 빠졌고,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참석자들도 150여 명으로 최소화해 1m 남짓 간격을 띄우고 배석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 엄태준 이천시장,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 김홍필 소방청 차장 등도 참석해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미래통합당 이종배 정책위의장과 송석준 의원,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이수진, 임종성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이은주, 류호정 의원 등 정치권의 발길도 이어졌다.

엄태준 이천시장은 조사를 통해 "이번 사고로 안전에 대한 인식 부족이 국민께 얼마나 큰 불행을 드리는지, 사람보다 눈앞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알게 됐다"며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날을 기억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더욱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사를 한 이재명 경기지사는 "우리는 모두 참사의 원인을 너무 잘 알고 있다"며 "최소한의 안전도 돌보지 않는 현장의 열악함, 인력 부족을 핑계 삼아 제대로 단속도 하지 못하고 노동 현장을 방치한 우리 사회가 이번 사고의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 목숨보다 절감되는 공사비가 더 많은 상황에서 목숨이 희생되는 건 필연"이라며 "건축주와 사업주에게 도의적 의미 이상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문 인사들의 발언 이후에는 유가족들의 헌화 순서가 이어졌다.

사고 이후 50여 일간 합동 분향소에 머물며 날마다 지켜봤을 영정이지만, 유가족들은 영정 앞에 서서 희생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다시 한번 오열했다.

10여 분간 이어진 헌화 도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가 함께 울음을 터뜨리거나, 70대 노모가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다 휠체어에 이끌려 영결식장 밖으로 나가는 등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됐다.

엄태준 시장과 이재갑·김현미 장관을 시작으로 각계 인사들의 헌화와 조문도 이어졌다.

일반 시민 조문객들과 노동 단체, 시민 단체 관계자들의 헌화도 함께 진행됐다.

이어 유가족들이 고인을 기리며 쓴 편지를 낭독하는 순서가 진행됐다.

이번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한 딸은 "사건 당일에도 딸의 생일을 생각하며 연락해주시던 다정한 아빠였다"며 "이런 아빠의 사랑에 보답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해 듣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번 합동 영결식을 끝으로 유가족들은 50여 일간 머물던 이천을 떠나 각자 고향에서 친지들과 함께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다만 유가족 협의회는 계속 유지해 책임자 처벌 촉구와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와의 회복지원금 지급 방안 논의 등 남은 절차를 이어갈 전망이다.

합동 영결식을 끝으로 그간 유가족들 바로 옆에서 심신을 돌보던 자원봉사자들도 해산을 앞두게 됐다.

이천시 자원봉사센터 소속 A(50대) 씨는 "아이 셋 아버지부터 24살 대학생까지 희생자들 저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다"며 "그들을 떠나보낸 유가족들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오열하고 추모했는데 이제 봉사가 끝난다고 하니 심경이 복잡하다"고 착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번 화재는 지난 4월 29일 오후 1시 32분께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용접 불티가 창고 벽면에 설치된 우레탄폼에 붙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로 근로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앞서 경찰은 용접 불티로 인해 이번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한익스프레스 임직원 5명과 시공사인 건우 임직원 9명, 감리단 6명, 협력업체 4명 등 24명을 입건했다.

이 가운데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들은 A 씨 외에 시공사 3명, 감리단 2명, 협력업체 3명 등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