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이란 유통 채널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유통사 ‘구조조정 1순위’로 꼽혔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었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업계 1위 롯데슈퍼의 손실 규모는 지난해 약 1000억원. 회사 내부에선 ‘이렇게까지 적자를 내는 사업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다른 슈퍼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GS수퍼는 지난해 3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회사 측은 “적자 점포를 정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 들어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자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슈퍼로 몰려들었다. 신선식품 분야에서 온라인 업체들이 채워주지 못한 것을 슈퍼가 줬기 때문이다. 침몰 위기의 슈퍼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 배경이다.
슈퍼의 부활…"집 가깝고 사람 덜 몰려 안심"
장보기 채널로 각광받는 슈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지난 2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8.2% 증가했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 중 가장 매출 증가폭이 컸다. 같은 기간 백화점은 21.4%, 대형마트는 10.6% 매출이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슈퍼마켓은 근거리 쇼핑의 대명사인 편의점(7.8%)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유통업계에서조차 ‘깜짝 실적’으로 평가했다. 올 1월만 해도 슈퍼마켓 매출은 6.7% 줄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만 해도 ‘슈퍼의 재부상’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모조리 대체할 것처럼 보였다. 쿠팡, 마켓컬리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에 주문이 급격히 몰렸고 백화점, 대형마트 매출은 급감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의 2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약 35% 폭증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이 기존 오프라인 유통의 역할을 모두 대신할 수는 없었다. 식품 분야가 특히 그랬다. ‘신선식품은 눈으로 보고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슈퍼는 최적의 쇼핑 공간으로 인식됐다.

슈퍼는 오프라인 업태 중에서 다소 모호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마트보다는 상품 구색이 적고, 매장 규모 또한 작았다. 편의점에 비해서는 매장 숫자가 턱없이 적었다. 규모와 숫자 모든 면에서 모호한 입지가 그동안은 ‘핸디캡’이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선 이 단점이 ‘장점’이 됐다.

모호한 입지가 오히려 장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확산도 슈퍼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사람들이 매장 규모가 큰 마트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슈퍼는 달랐다. 굳이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동네마다 있고, 매장 규모도 크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많았다. 장보러 마트에는 안 가도 슈퍼엔 가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롯데슈퍼가 최근 두 달간(2월 1일~3월 29일) 실적을 분석한 결과, 즉석식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1.8%, 라면은 14.5% 늘었다. GS수퍼에서도 지난 2월 시리얼(28.5%), 냉장식품(20.5%), 라면(15.3%) 등의 매출 증가율이 유독 높았다. 사람들이 슈퍼에선 주로 먹을 것을 많이 샀다는 얘기다.

슈퍼는 편의점의 ‘대체재’ 역할도 했다. 5만 개에 육박하는 편의점은 접근성에서 슈퍼를 압도한다. 다만 장보기엔 부족함이 많다. 슈퍼에 비해 식품 구색이 턱없이 적다. 최근 소포장 과일, 채소 등을 일부 판매하긴 하지만 1~2인 가구에 상품 대부분이 최적화돼 있다.

슈퍼의 매출 증가세는 3월에도 계속됐다. 롯데슈퍼의 3월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5.4%로 나타났다. GS수퍼 관계자도 “예상했던 것보다 매출이 훨씬 좋다”고 전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하면 다시 매출이 떨어질 수 있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최근 매출이 늘고 있지만, 점포의 효율화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