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제발 그만" 英 심금 울린 간호사의 호소
“병원 중환자실에서 40시간 교대근무를 하다가 지금 퇴근했습니다. 슈퍼마켓을 갔는데 과일과 채소 등 먹을 것이 없어요. 난 단지 (휴식을 취할) 앞으로의 48시간 동안만 먹을 게 필요합니다. 사재기를 제발 멈춰 주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영국에서 식료품 등 생필품에 대한 사재기(panic buying) 현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영국 국민공공보건서비스(NHS) 소속 한 간호사가 눈물을 흘리며 ‘사재기를 제발 멈춰달라’고 호소한 영상이 영국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며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영국 정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영상을 언급하며 국민들에게 사재기를 멈춰줄 것을 당부했다.

영국 요크에 살고 있는 NHS 소속 간호사인 돈 빌브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접 찍은 영상(사진)을 올렸다. 그는 퇴근 후 슈퍼마켓을 다녀오는 길에 직접 영상을 찍었다. 그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40시간 교대근무를 마친 직후 슈퍼마켓에 갔다”며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채소 등 음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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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 소속 의사와 간호사 등 코로나19 대응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 종사자들은 일반 시민들과 달리 쇼핑할 시간이 부족하다. 영국 전역에서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식료품 등을 구하는 데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일을 마치고 슈퍼마켓을 찾으면 선반이 대부분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영상에서 “난 단지 앞으로 48시간 동안 음식을 갖고 싶었을 뿐”이라며 “과일도 야채도 없는데,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사재기를 멈추면 된다. 당신들이 아플 때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 같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제발”이라고 호소했다.

빌브루 간호사가 올린 영상은 하루만에 500만명이 넘는 조회수를 올리며 영국 전역에서 화제를 모았다. 공영 BBC와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은 이 영상을 일제히 보도하며 “우리들의 영웅인 간호사들이 패닉 사재기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21일 열린 영국 정부의 정례 기자회견에서도 빌브루 간호사의 영상이 언급됐다. NHS 의료 책임자인 스티븐 루이스 교수는 “솔직히 우리 모두는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용납할 수 없다”며 “이들은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조지 유스티스 영국 환경·식품·지역 문제 담당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재기를 중단할 것을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최근의 문제는 식료품 부족이 아니라 사재기로 인해 선반을 채울 시간이 부족한 데 있다”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식료품을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소매 컨소시엄의 헬렌 디킨슨 대표도 “식료품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며 “다만 수요 급증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3주 전에 비해 지금 사람들의 집에는 10억 파운드(약 1조5000억원)어치의 음식이 쌓여있다”며 “이것을 먼저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