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혐오·편견과 싸우기도…'대구 봉쇄' 발언에 쓰린 상처
위기에 빛난 대구 시민의 저력…자영업자 살리기·기부 잇따라
[대구 사투 한달] ① 집에 갇혀 지낸 30일…"그래도 희망은 있다"
대구·경북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지 한 달.
매일 수백명이 확진되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고, 암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두고 지근거리에 있는 가족과 '생이별'을 택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가게 문을 닫은 채 일손을 놓은 자영업자들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시민들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힘든 이웃을 도우려 팔을 걷어붙이고 십시일반 온정을 모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힘내요 DAEGU', '#힘내라 대구·경북' 등 해시태그 응원이 잇달았다.

[대구 사투 한달] ① 집에 갇혀 지낸 30일…"그래도 희망은 있다"
◇ "아버지도 뵙지 못하고…" 변화한 일상
대구에 사는 회사원 이모(49)씨는 아버지 생신을 앞두고 주말(21일)에 형제들과 모이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단지 감염병 예방 수칙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자칫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마스크는 충분한지, 건강은 괜찮은지 등이 매 순간 궁금하지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쭙는 것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2주일에 한 번,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은 찾아뵀지만, 지금은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씨는 "며칠 전에 이산가족이란 말이 느닷없이 뇌리를 스쳤다"며 "한 귀로 듣고 흘렸던 그 말이 지금은 너무도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가정주부 박모(38)씨는 개학이 연기된 초등학생 자녀들 뒷바라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멀쩡한 이웃이나 지인에게 병을 퍼뜨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집 밖으로 향하려는 발길을 잡아끈다.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웃 얼굴을 못 본 지도 3주가 넘었다.

허전한 마음을 SNS로 달래보지만, 터널과 같은 길고 긴 단절의 시간은 이웃을 향한 그리움을 더 키웠다.

박씨는 "혹시나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봐 만남을 차일피일 미뤘다"며 "이웃들도 만남을 주저하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46)씨는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확산한 지난달 말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라고 했을 때는 '1주일 정도만 있으면 다시 회사로 나가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번잡한 출퇴근이 없어지고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이다.

매일 회사 동료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업무 등 이야기를 주고받던 일상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대구 사투 한달] ① 집에 갇혀 지낸 30일…"그래도 희망은 있다"
◇ '대구 코로나?' 가슴 아픈 지역 혐오
코로나19 사태는 '대구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확산했다.

감염병 앞에 특정 지역명을 넣은 '대구 포비아'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대구 시민은 한순간에 코로나19 바이러스 보균자로 둔갑해 기피 대상이 됐다.

확진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알리는 언론 보도와 SNS 글에서 '대구 폐렴', '대구 코로나' 등 용어가 쓰여 대구·경북 시민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전북 지역 한 대학은 개강 시기에 맞춰 의심 증상이 없는 대구·경북 지역 학생도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혀 원성을 샀다.

뒤늦게 해명하긴 했지만 한 정치인의 '대구 봉쇄' 발언도 시민 가슴에 못을 박았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강한 우려를 표하면서 "대구 코로나가 아닌 코로나19다"며 "대구시장을 욕할지언정 대구시민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대구시의회도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대구시민에게 상처를 주는 지역혐오 발언이 양산되고 있다"며 "사랑하는 가족과 격리돼, 심지어 생업조차 포기한 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구시민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시점부터 시민 피로감이 쌓여가는 징후는 통계에서도 포착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장) 연구팀이 한국 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28일 전국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구·경북 지역 스트레스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구·경북 응답자의 65%는 '자신을 무기력하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71.2%는 감정에 상처를 받고 상당한 정도의 울분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신천지 신도인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대구 시민 피로도는 한층 더 높아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구 사투 한달] ① 집에 갇혀 지낸 30일…"그래도 희망은 있다"
◇ 비관은 그만…빛나는 시민 의식으로 '도약'
대구·경북은 이타적 시민 정신으로 위기를 딛고 일어서는 중이다.

실의의 빠진 대구 지역 상인을 돕기 위해 SNS에서는 '자영업 살리기'가 한창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맛집일보'는 최근 자영업자들을 위해 포장 용기를 무료로 지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배달하지 않는 업체를 대상으로, 외출을 자제하며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 부담에 허덕이는 데다 마냥 휴업할 수도 없는 자영업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라도 나누려는 시도다.

이 페이지에는 포장 용기 지원을 희망하는 상인들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한 상인은 업체명을 밝히며 "코로나19로 3주 정도 휴업했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며 "이제 배달도 해보려는데 포장 용기를 받아 용기를 내보고 싶다"고 적었다.

대구를 도우려고 달려온 이들을 향한 배려와 침착함도 빛났다.

대구역 인근에서 모텔 2곳을 운영하는 시민이 모텔 1곳 38개 객실을 코로나19 자원봉사자에게 무료로 내놓는 등 크고 작은 기부가 줄을 이었다.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1㎞에 가까운 긴 줄이 생겨도 질서 있게 차례를 기다리는 인내심도 발휘했다.

나보다 더 급한 사람에게 마스크를 양보하려는 '마스크 안 사기' 운동에 동참하는 시민도 갈수록 늘었다.

서문시장을 비롯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안 받거나 낮춰주는가 하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성금 기부'도 이어졌다.

또 전국 각지, 해외에서 보낸 구호품과 '의료 공백'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의료진, SNS에서 확산한 응원·격려의 물결은 대구·경북 시민의 눈물을 닦아줬다.

대구시민 김모(62)씨는 "국채보상운동, 2.28 민주화운동 등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어느 곳보다 한마음으로 대의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선 곳이 대구다"며 "코로나19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잘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