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1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민주당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1위에 올랐다. 지난 3일 아이오와주 경선에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사실상 ‘무승부’를 기록한 데 이어 두 번째 경선이 열린 뉴햄프셔에서 승리하며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샌더스는 전국 여론조사에서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미 CNN에 따르면 97% 개표 기준으로 샌더스는 25.9%, 부티지지는 24.4%를 득표했다. 이어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19.8%,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9.3%, 바이든 8.4% 순이었다.

뉴햄프셔에 걸린 24명의 대의원 중 샌더스와 부티지지가 똑같이 9명씩을 나눠 가졌고 클로버샤는 6명을 확보했다. 워런과 바이든은 대의원을 1명도 얻지 못했다. 대의원 배정 땐 득표율 15% 미만 후보를 제외하고 계산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CNN은 “아이오와에 이어 뉴햄프셔에서도 샌더스의 강력함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샌더스가 뉴햄프셔 경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면서도 아이오와에 이어 뉴햄프셔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한 강력한 경쟁력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뉴햄프셔는 원래 ‘샌더스 절대 강세’ 지역이다. 2016년 민주당 경선 때 샌더스가 60%를 득표해 약 38%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22%포인트 차로 따돌린 곳이다. 하지만 올해 경선에선 샌더스가 4년 전만큼 표차를 압도적으로 벌리진 못했다. 아이오와 경선 때 돌풍을 일으킨 부티지지가 뉴햄프셔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간 데다, 당초 5위권으로 예상됐던 클로버샤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는 등 중도층 후보의 추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더스의 강점은 전국적으로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분석 업체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가 지난 2~10일 실시한 5개 여론조사 평균을 보면 샌더스는 23.0%로, 20.4%에 그친 바이든을 앞섰다. 올 1월까지만 해도 바이든이 1위였지만 판세가 뒤바뀌었다. 이어 아직 경선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13.6%, 워런 13.0%, 부티지지 10.4% 순이었다. 샌더스는 다음 경선인 네바다주(22일) 여론조사 평균에서도 바이든(21.0%)에 이어 17.5%로 1, 2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샌더스는 이날 승리가 확실해지자 지지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오늘밤 이곳에서의 승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종말의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올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샌더스는 전 국민 의료보험, 최저시급 15달러, 무상교육, 학자금 탕감 등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대선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구도로 치른다는 구상이다.

샌더스의 부상과 달리 바이든은 추락했다. 아이오와 경선에서 4위에 그치며 체면을 구긴 데 이어 뉴햄프셔에선 5위로 주저앉으며 초반 2개 주 경선의 ‘최대 패자’가 됐다. 워런도 클로버샤에게 뒤지며 4위로 밀려나면서 여성 대표주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렸다.

대만계 사업가 앤드루 양은 이날 대선후보 경선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양은 ‘자유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미국 성인에게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초반 저조한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다. 양은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 밝히지 않은 채 트럼프를 꺾을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뉴햄프셔 경선에서 86% 개표 기준 약 85% 득표율로 싱겁게 승리를 확정지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