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마다 공을 들이고 있는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과연 백척간두의 상황을 타개할 마법의 지팡이가 될 수 있을까. 아쉽게도 국내 금융사들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 서류 속에만 있다. 아직도 많은 금융사가 디지털 전환의 첫걸음을 수십 가지 과제를 나열하는 로드맵을 세우는 데서 시작한다. 이런 방식의 문제 해결은 과거 정형화된 IT 시스템을 구축할 때나 통하던 방식이다. 디지털 전환은 정해진 요구 사항을 구현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고객 경험, 상품, 프로세스를 만들고 사업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애자일이나 소프트웨어 개발과 운영이 동시에 이뤄지는 데브옵스 같은 실천적 탐색이 주목받는 이유다. 디지털 전환이 담당 부서만의 일로 치부되는 의사결정 구조도 해결해야 한다. 업(業)의 특성을 이해하는 현업부서의 참여 없이는 사업과정에서의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현업부서가 기획과 실행을 모두 이끌지 않는 한 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더디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의 열쇠가 문제 해결 역량은 물론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는 ‘양수겸장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는 이유다. 당장 그럴싸한 기술보다 직원의 역량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 확률과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방책이다.
가장 큰 문제는 디지털 전환 노력이 성과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드맵상의 과제를 수행했는지에 집착하다 보니 과제 해결이 얼마나 사업 성과로 이어졌는지 관리하지 않는다. 고객 경험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생산성과 효율성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신규 고객과 수익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디지털 전환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성과 중심의 디지털 핵심성과지표(KPI)가 최고경영자(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의미있는 비중으로 부여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결국 고객 경험과 생태계, 이 두 가지에서 승자가 결정될 것이다. 고객의 불편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고객 경험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내가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면 경쟁 금융사는 물론 IT 업체들도 끊임없이 영역을 침범해올 것이다. 차별적인 고객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금융에 국한하지 말고 더 넓은 관점에서 고객을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생태계 전략이다. 생태계 경쟁이야말로 선점 효과가 크다. 금융사들이 생태계 전략 수립과 실행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