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車사고 분석, 3분 내 보험금 지급…핑안그룹, 보험 패러다임 바꿨다
“은행(뱅크)을 넘어 진정한 기술(테크놀로지) 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디지털 혁신은 금융이 고객 지식을 관리하는 사업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새로운 시대의 패권을 잡는 가장 중요한 열쇠기 때문이다.”

-리처드 페어뱅크 캐피털원 회장이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 난징 쓰차오(四橋)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3㎡ 크기의 빨간색 부스. 얼핏 보면 스티커사진을 찍는 곳 같지만, 이곳은 ‘인공지능(AI) 의사’가 사람을 진료하는 무인 진찰실이다. 환자들이 부스에 들어가 체온 등을 잰 뒤 AI프로그램을 따라 문진을 받으면 멀리 도시에 있는 의사는 이를 기초로 약을 처방한다. 환자는 진료소 옆에 마련된 자판기에서 약도 살 수 있다. 세계 최초 ‘AI 1분 진료소’를 내놓은 곳은 병원이 아니라 세계 1위 보험회사(시가총액 기준 약 264조원) 핑안(平安)보험그룹의 계열사인 핑안굿닥터. 왕타오 핑안굿닥터 회장은 “3억 건이 넘는 보험사 데이터에 근거해 개발된 AI로 온라인 진료를 받으면 병원비가 직접 병원에 가는 것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디지털 생태계 조성 나선 핑안보험

핑안보험그룹은 디지털 혁신을 등에 업고 업(業)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핑안굿닥터는 2015년 내놓은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예약, 의료 전문가 상담, 진단 및 치료법 제시 등을 제공하는 온라인 의료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이 앱의 월 이용자 수는 5100만 명에 달한다. 핑안굿닥터는 중소도시에는 좋은 의사가 없고 대도시의 개인 병원 의사들은 환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주목했다. 앱을 통해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면 새로운 사업 기회는 물론 이용자의 건강 데이터도 쌓아 보험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회사는 이를 위해 1000명의 내부 의료진과 1만3000여 명의 외부 의료진이 협업하는 생태계를 구축했다. 핑안굿닥터와 협업하는 병원은 현재 3100여 곳, 약국은 1만여 곳에 이른다.

핑안보험이 내놓은 ‘3분 초고속 현장 조사 시스템’도 자동차 보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스템은 교통사고 신고 3분 안에 앱을 통해 수리비 견적을 낸다. 이를 위해 2500만 개 부품에 대한 자료와 정비소 14만 곳의 수리비 데이터를 활용했다. 뤄젠룽 동양생명 사장은 “사흘 정도 걸리던 사고처리 기간을 4000분의 1 수준으로 단축한 이 기술을 중국 내 20여 개 보험사가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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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옷으로 갈아입는 은행들

글로벌 은행들도 디지털 혁신을 서두르고 있다. 2007년 ‘글로벌 디지털뱅크’를 목표로 세운 뒤 정보기술(IT)플랫폼 구축에만 8년간 40억5000만유로(약 5조원)를 쏟아부은 스페인 대형은행 BBVA가 대표적이다.

BBVA는 2014년 IT플랫폼 구축을 완료하면서 본격적인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하루 2억5000만 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300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디지털 본부도 신설했다. 이 부서는 여신과 자산관리 등 회사의 핵심 사업을 디지털화했다. BBVA는 혁신 아이디어를 빠르게 수용하고 사업부문의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핀테크 업체들과 함께 ‘열린 혁신 생태계’ 전략을 구사했다. 1억2000만달러(약 1398억원)에 미국 인터넷전문은행 ‘심플’도 인수했다. 실리콘밸리에는 1억달러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해 가상화폐, 지급결제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2016년부터는 ‘BBVA API 마켓’을 운영하면서 핀테크 기업이 새로운 지급결제서비스 관련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API를 제공하고 있다. API는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를 말한다.

BBVA의 디지털(모바일 및 PC) 채널을 통한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16%에서 지난해 41%로 커졌다. 프란시스코 곤살레스 전 BBVA 회장은 “아마존과 같이 소비자에게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점 플랫폼을 보유한 회사만 디지털 시대에 생존할 것”이라며 “금융업계의 넷플릭스가 되기 위해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