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원하는 기능과 서비스를 질문하고, 그 기능과 서비스를 적절한 방식으로 빠르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요청하지 않는 기능과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업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2019년 연례 주주서한에서

“알렉사, 세제 한 통 주문해줘.” 리모컨을 닮은 전자기기에 대고 말하자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쇼핑 장바구니에 세제가 담겼다. 목소리만으로 생필품을 주문할 수 있는 이 기기는 미국 아마존이 2017년 출시한 ‘대시 원드’다. 6인치 크기에 배터리로 작동한다. 인공지능(AI) 개인비서 알렉사가 내장돼 있어 목소리만으로도 주문이 가능하다. 내장된 바코드 스캐너로 제품 바코드를 찍어 물건을 고를 수도 있다. 2017년 출시 당시 대시 원드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하지만 인기가 많아지면서 대시 원드 가격은 32달러로 처음 나왔을 때보다 12달러나 올랐다.

그동안 유통·소비재기업의 주된 목표는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이었다. 이젠 바뀌었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게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대니얼 장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유통산업에서 온·오프라인의 결합은 물론 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하고 있다”며 “신유통 시대에는 소비자의 생각을 파악하고 상상 이상의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인공지능(AI) 개인비서 알렉사는 다양한 전자기기에 들어간다. 지난해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선 알렉사 기능을 적용한 LG전자 냉장고가 선을 보였다. /한경DB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인공지능(AI) 개인비서 알렉사는 다양한 전자기기에 들어간다. 지난해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선 알렉사 기능을 적용한 LG전자 냉장고가 선을 보였다. /한경DB
원격 기술 활용한 쇼핑 서비스

아마존은 대시 원드 이전에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대시 버튼’을 2015년 내놨다. 대시 버튼은 원격으로 아마존에 제품을 주문할 수 있는 전자 기기다. 버튼 표면에는 세제, 음료수 등 주로 가정에서 쓰는 제품의 브랜드와 회사명이 인쇄돼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브랜드의 섬유유연제가 필요하면, 세탁기에 미리 붙여 놓은 대시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 즉시 아마존에서 주문을 받아 배송한다. 아마존 대시 버튼은 올해 초 단종됐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게 마이크와 바코드 인식 기능 등이 적용된 대시 원드다. 이 같은 디지털 혁신 덕분에 아마존의 지난해 매출(2329억달러)은 전년 대비 30%가량 뛰었다.

원격 인식 기술을 활용한 유통 혁신은 업종에 관계없이 확산되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가전업체 리페르는 지난해 ‘스마트 냉장고 액세서리’를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AI 소프트웨어 코타나를 적용한 카메라 겸 원격 알람 기기다. 이를 활용하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 목록을 스마트폰으로 전송받아 볼 수 있다. 식재료가 떨어졌을 경우 사용자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준다. 목소리를 인식하는 ‘보이스 컨트롤러’까지 추가 설치하면 음성으로 제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리페르의 매출은 2016년 100억달러에서 지난해 125억달러로 2년 새 25% 급증했다.
고객의 취향도 데이터로 축적

신기술을 유통 과정에 접목한 사례는 식음료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8년 설립된 음료 컨설팅업체 밸리드필은 2012년 코카콜라와 함께 사람들이 원하는 맛으로 음료를 조합해주는 ‘코카콜라 프리스타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체리맛 코카콜라, 복숭아맛 스프라이트 등 200여 가지 음료를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저칼로리·무칼로리 옵션은 물론 카페인 옵션까지 제공한다.
2017년엔 전자태그(RFID) 인식 기능을 넣은 전용 컵도 내놨다. 선불 충전 시스템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컵에 일정 금액을 충전하면 음료수를 마실 때 자동 결제되는 방식이다. 매번 돈을 낼 필요가 없다. 한 번 구매한 컵을 재사용할 수 있어 환경도 보호한다. 전용 컵을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과 연동할 수도 있다. 주로 마시는 음료 조합을 앱에 저장한 뒤 기기에 선불 충전된 전용 컵을 자판기에 갖다 대면 음료가 자동으로 나온다. 크리스 헬만 코카콜라 프리스타일 총괄매니저는 “소비자들이 음료를 마실 때마다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고객의 취향을 데이터로 축적해 다시 고객에게 서비스해 주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주류업체 페르노리카는 2014년 술을 취향대로 조합해주는 ‘OPN 칵테일 메이커’를 내놨다. 조그만 책장 모양의 주류 탭에 먹고 싶은 술을 채워넣은 뒤 원할 때 따라 마시는 제품이다. 페르노리카는 소비자 구매 내역을 분석해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맞춤형 칵테일 레시피도 제공하고 상품 전략도 짠다. 가정의 주류 소비를 높이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