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불법 영업하던 호프집 화재 참사로 137명 사상
"자료 등 참사 관련 기억들 공공 기록으로 남기자"…움직임 활발
[인천화재참사 20년] ① 57명 희생된 그날 되풀이하지 않아야
[※ 편집자주 = 오는 30일은 인천시 중구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고교생 등 모두 57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폐쇄 명령을 받은 업소에서 불법 영업 중 벌어진 참사인 데다 희생자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이란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연합뉴스는 인천 화재 참사 20년을 맞아 그날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노력과 당시 기억을 공공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움직임, 아물지 않은 유족들의 상처 등을 살펴보는 기사를 2편으로 제작해 송고합니다.

]

늦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1999년.
그 해 10월 30일 초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인천 중구 인현동의 풍경은 평소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인전철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인천 원도심 골목은 토요일을 맞아 노래방과 주점, PC방, 음식점 등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대참사는 그날 오후 6시 55분 인현동의 4층짜리 상가 건물의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면서 시작됐다.

종일 노래방 내부 도장공사를 한 작업자들이 페인트와 시너통을 카운터 앞에 남겨 놓은 게 화근이 됐다.

노래방을 청소하던 종업원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밀폐된 공간에 차 있던 유증기에 불이 붙었다.

불길은 시너통과 노래방 천장으로 번졌고 내부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 때 같은 건물 2층 호프집에는 주변 학교들의 축제가 끝나 뒤풀이를 하거나 친구의 생일축하를 위해 모인 120여명의 청소년이 있었다.

지하 노래방에서 치솟은 불길은 계단 옆에 설치된 스티로폼·우레탄폼으로 만들어진 가연재료에 번져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화염과 유독가스가 출입문을 통해 호프집 안으로 빠르게 유입되자 120여명의 청소년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비상구를 찾아 한꺼번에 화장실과 주방 쪽으로 몰렸다.

하지만 창문까지 석고보드로 장식된 호프집은 말 그대로 밀폐된 공간이었고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청소년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날 화재 참사 현장에서는 54명이 흡입화상과 저산소증, 질식 등으로 숨을 거뒀다.

병원으로 옮겨진 부상자 81명 중 3명은 치료 중 사망해 전체 희생자 수는 총 57명으로 늘었다.

당시 건물 3층 당구장에 있던 청소년 등 17명은 화염과 유독가스가 유입되자 창문을 뜯어내고 10m 아래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인천화재참사 20년] ① 57명 희생된 그날 되풀이하지 않아야
참사 발생 초기에는 '중·고교생들이 호프집에 갔다가 당한 변'이라는 식의 청소년 일탈 문제로 치부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사법당국의 수사를 통해 점차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공무원 부정부패의 고리가 빚어낸 또 하나의 '인재'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분노의 목소리와 관계 당국을 질타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해당 호프집은 무허가 영업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다가 적발되면 관리 사장에게 실제 업주를 대신해 처벌받도록 하는 식으로 불법 영업을 계속했다.

참사 발생 전에도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가 적발돼 폐쇄 명령을 받았지만 버젓이 또 영업을 하고 있었다.

불법 영업의 배후에는 뇌물을 받고 형식적인 단속을 하거나 단속정보를 알려준 경찰관과 구청 직원 등 부패한 공무원들이 있었다.

불이 처음 난 지하 노래방 천장에 설치된 확산 소화기 15대는 리모델링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제거돼 있었고 호프집 내부 구조는 탁자와 의자들로 빼곡히 들어차 통로로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비좁은 상태였다.

참사 발생 2개월 후 검찰이 발표한 종합 수사 결과에서는 업소 관계자와 공무원 등 무려 34명이 입건돼 형사처벌을 받았다.

채 꽃봉오리를 피우지도 못한 10대 40여명이 포함된 인천 화재 참사의 커다란 희생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방 규제가 크게 강화됐고 안전사각지대에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관계 법령도 꾸준히 보완됐다.

특히 청소년들을 꾸짖기에 앞서 건전한 놀이문화 공간과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요구가 사회 전반에 퍼지는 계기가 됐다.

[인천화재참사 20년] ① 57명 희생된 그날 되풀이하지 않아야
인천시교육청은 화재 참사 현장에서 가까운 옛 초등학교 부지에 2004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을 건립했다.

총사업비 264억원이 투입된 회관은 대공연장, 소공연장, 음악감상실, 전시실, 실내 체육관 등을 갖추고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관리 소홀, 원칙을 지키지 않는 세태를 꼬집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선박 불법 개조와 과적, 관계기관의 관리·감독 부실 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인천 화재 참사와 '닮은 꼴'이라는 지적도 있다.

올해 인천 화재 참사 20주기를 맞아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날의 기억을 공공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장한섬 홍예문문화연구소 대표는 "이미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보존 연한이 정해져 있는 행정기록 상당 부분이 폐기된 상태"라며 "참사와 관련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은 지역사회의 대응 역량을 돌아보고 지역공동체를 더 공고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회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 추모준비위원회는 인천 화재 참사가 개인의 기억으로 매몰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기억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공개되지 않은 행정자료, 유족과 증인 진술 등을 담은 기록물을 제작할 예정이다.

조선희 인천시의원은 "인천 화재 참사를 공공의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더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시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그 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적 기억으로 복원해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