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이슈프리즘] 탈세계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경제가 불확실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경제 전망 기사엔 ‘대내외 불확실성’이라는 문구가 늘 들어간다. 기업들이 사업 계획을 세울 때도 올해보다 내년에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전제한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전형을 벗어난’ 국가 지도자들의 등장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2020년을 두 달여 앞둔 지금, 경제에 대해 한 가지 확실한 건 ‘부정적’ 전망이 많다는 것이다. 10~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도 난기류가 흐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돈을 풀면서 세계 경제는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났다. 미국은 ‘최장기 호황’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감세정책은 기업 투자를 촉진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상대로 관세장벽을 높이는 무역전쟁을 시작했고, 세계 경제는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美 관세장벽 '부메랑'

당사국인 중국은 물론 중국으로의 수출이 많은 독일과 한국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은 27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독일 제조업 경기는 10년 만에 최악이다. 한국은 수출이 10개월째 마이너스다. 올 들어 7월까지 세계 10대 수출국의 수출 감소율을 보면 한국이 가장 크고, 홍콩 독일 일본 순이다. 미국에도 부메랑이 되고 있다. 미국의 9월 제조업지수는 10년 만에 가장 낮았다. 고용지표는 아직 괜찮지만, 제조업 부진이 확산되면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에 반짝 수혜를 입었던 미국 철강업계도 원재료인 고철 수입가격 상승 등의 역풍을 맞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극적 타협이 이뤄지더라도 세계 무역질서가 ‘트럼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유럽연합(EU)으로 전선을 넓혔다. 오는 18일부터 EU 항공기엔 10%, 일부 농산물과 공산품엔 25% 관세를 부과한다. EU는 맞대응을 검토 중이다. ‘탄핵’이란 변수가 있지만, 현재로선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상황이 달라질까.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노조 편에서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보여왔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대(對)중국 강경파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도 자국 우선과 보호무역을 특징으로 하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흐름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트럼프 이후엔 달라질까

기업들은 이에 대응해 글로벌 공급망(value chain)을 다시 짜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부각됐지만, 글로벌 공급망 조정은 지난 10년간 세계화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이미 진행 중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에 따르면 모든 산업의 공급망에서 연구개발(R&D)과 혁신이 중요해졌고, 단순 임금 격차에 의존한 상품 교역은 전체의 18%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 같은 추세는 숙련된 일꾼이 많고, 혁신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는 선진국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다.

큰 변화의 시기다. 수출로 성장해 온 한국은 지금 어떤가. 변화의 격랑과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다. 저임금이 경쟁력인 단계는 지났지만 선진국만큼 혁신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지도 않다. 미래 산업 인프라도 부족하다. 기업들은 살기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국내에 투자하려는 기업마저 떠나고 싶게 만든다. 대통령이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했다. 경청 다음은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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