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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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메코’는 요즘 뉴욕 젊은이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의류뿐 아니라 커튼, 우산, 침대보, 쿠션 등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선명한 색채와 발랄한 패턴이 트레이드마크다. 회색, 검은색 등 무채색이 주류인 뉴욕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한국에서도 북유럽 인테리어 돌풍과 함께 인기다.

핀란드 업체인 마리메코가 핫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데는 티나 알슈타 카스코 마리메코 최고경영자(CEO)의 공이 컸다는 분석이다. 그는 만 37세의 젊은 여성 CEO다. 올해로 3년째 CEO직을 맡고 있다. 카스코 CEO는 2016년 520만달러 수준이던 이 회사의 영업이익을 지난해 1770만달러로 3배 이상 끌어올렸다.

재키 케네디가 즐겨 입던 브랜드

티나 알슈타 카스코 마리메코 CEO, 뉴욕 '패피' 열광하는 브랜드로 부활
마리메코는 68년 전통의 핀란드 디자인 회사다. 1951년 핀란드 헬싱키에 설립됐다. 브랜드 론칭 직후부터 화려한 프리팅과 색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브랜드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건 단연 재클린(재키) 오나시스 케네디 미국 대통령 부인 덕분이다. 1960년 재키 케네디가 남편의 선거 운동 기간에 마리메코의 원피스를 입으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마리메코는 몰라도 재키 케네디가 입은 양귀비 문양의 원피스는 한눈에 알아본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였다. 1960~1870년대를 풍미하는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

‘재키 케네디 효과’를 등에 업고 매출도 상승 곡선을 그리던 마리메코는 1990년대 들어 파산 위기에 몰렸다. 낡고 오래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미국 인기 드라마 ‘섹스앤더시티’ 주인공이 마리메코 원피스를 즐겨 입으면서 실적이 잠깐 반등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60년 전통의 패션 브랜드’ ‘재키 케네디가 사랑한 패션 브랜드’ 등의 수식어가 오히려 이 회사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0대 여성 CEO 구원투수로

2000년대 들어 이 회사는 이 틀을 깨기 위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마리메코 이사진이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을 2017년 CEO로 선임한 배경이다. 마리메코 이사진의 당시 결정은 이례적이었다는 평가다. 핀란드의 기업 문화는 다른 곳보다 보수적 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 태어난 카스코 CEO는 어린 시절부터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그는 “12세 때부터 유명 패션 잡지를 구독하기 위해 부모님께 졸랐다”며 “프랑스어로 된 패션잡지 마리 클레어를 영어로 쓰인 보그를 읽곤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티나 알슈타 카스코 마리메코 CEO, 뉴욕 '패피' 열광하는 브랜드로 부활
그는 24세였던 2005년 마리메코에 입사했다. 그 전부터 마리메코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이후 경영대학원에서 마리메코 드레스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을 정도로 회사에 애정을 가진 사원이었다. 입사 후엔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주로 맡았다.

2014년 디자이너와 예술가들로 구성된 팀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드러났다. 그는 “당시 극도로 겁을 먹었다”며 “내 임무는 스스로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설명하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대적 브랜드로 부활

그는 CEO로 발탁된 뒤 대대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카스코 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의 경우 문화 등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며 “변화를 위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조화시키는 작업이 어려웠다고 그는 설명했다.

카스코 CEO는 과감한 프린팅 모양이라는 기존 마리메코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되 이 모양을 모자, 토트백, 후드티 등 여러 품목에 적용했다. 패션과 기성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수건, 접시, 담요 등 모든 인테리어 제품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제품을 파는 상점도 젊고 도시적인 느낌으로 바꿨다. 카스코 CEO는 “목표 고객층을 연령이 아닌 취향에 따라 정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중심의 제품 철학도 정립했다. 마리메코 창업주인 직물 디자이너 아르미 라티아는 여성이었다. 현재 CEO인 카스코는 물론이고 마리메코 직원의 90% 이상이 여성 직원이다. 카스코 CEO는 “마리메코의 디자인 철학은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성이 드레스를 입고 뛰고 싶다면 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카스코 CEO는 “마리메코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거의 파산할 뻔했지만 좀 더 현대적인 디자인과 재료의 혼합 덕분에 다시 살아났다”며 “현대화 덕분에 기존 고객과 새로운 고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마리메코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그는 “이제 성장 페달을 밟을 때”라고 했다. 여전히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핀란드에서 나오는 만큼 이제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