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사진)가 올해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김 대표는 다음달 개막하는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돼 참가국 전시관과 작가를 심사한다. 본전시에는 예술가 79명이 참여하며 한국 출신 작가는 이불, 강서경, 아니카 이 3명이다.
국내 최대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정권력은 누가 쥘까?2015년 12월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발탁해 첫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취임한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오는 12월13일 임기가 끝나면서 차기 관장 인선에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 관장 선임은 문재인 정부의 미술문화 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지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21세기형 수장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코드에 기댄 인사거나 전통적 프레임에 갇힌 리더는 미술관의 미래가 담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점 역시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서울관 과천관 덕수궁관 청주관(수장보존센터) 등 4개 분점을 거느린 국립현대미술관은 한해 예산만 724억원에 달하고, 학예인력은 135명 안팎이다. 관장이 인사와 예산 운용의 자율권을 갖는 책임경영기관이다. 행정안전부는 이르면 10월 새 관장 모집 공고를 낼 예정이다. 문체부는 개방형 직위 공모 방식으로 선발된 후보들을 1, 2차 면접과 신원조회, 임용심사 등을 거쳐 내년 1월 말께 임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임기는 3년이며, 기관 운영 성과에 따라 재계약도 가능하다.미술계 안팎에서 마리 관장이 임기 3년 동안 뚜렷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어서 전문성과 능력, 인품을 겸비한 인물이 우선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등 물망미술계 내부에서는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53)를 비롯해 이용우 전 상하이히말라야미술관장(66),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70), 이영욱 전주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61), 성완경 미술평론가(74), 임옥상 민중미술작가(68),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61)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인사권자인 문체부 장관의 ‘낙점’을 받기 위해 온갖 ‘채널’을 동원하는 등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는 소문이다.여성으로는 처음 서울시립미술관 지휘봉을 잡은 김홍희 이사장이 단연 눈길을 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으로 ‘박 시장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김 이사장은 지난 6년간 서울시립미술관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뉴욕 맨해튼의 헌터칼리지를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대에서 미술사학, 홍익대에서 서양미술사 박사과정을 마친 미술계 재원이다.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2003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2006년)을 차례로 맡아 한국 미술의 선진화를 이끌었다.이용우 전 관장은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를 거쳐 미술계 현안을 순조롭게 처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화단에서 언론인,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교수 등을 지낸 그는 ‘미술 행정가’ ‘미술계 마당발’로 통한다. 국내에 비엔날레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5년에 광주비엔날레를 기획해 주목받았고, 2013년 세계비엔날레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국내 최대 현대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를 이끌고 있는 김선정 대표도 물망에 올랐다. 국내외 미술계의 폭넓은 네트워크와 미술분야 전문성, 경영 능력을 겸비한 데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여성 고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가 발표한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 그는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 해외 미술관 전시에 10여 차례 큐레이팅을 했다.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이영욱 전주대 교수도 거론된다. 이 교수는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문화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문예미학회 편집위원, 미술무크지 ‘포럼 A’ 발행인 등으로 활동해 왔다.이 밖에 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66) 등의 이름도 오르내린다.◆전문성·현실감각 뛰어나야꽁꽁 얼어붙은 미술시장을 살리는 데 전문성과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 기용돼야 한다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동안 한국현대미술의 국제화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세계 미술 흐름에서 이렇다 할 이슈를 만들지 못한 점 등이 관장 선임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명예회장은 “오는 12월 청주 수장고가 개관하면 규모상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 되지만,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다”며 “조직을 혁신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지도력을 발휘할 인물이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도 “작년 가을부터 경매를 중심으로 ‘온기’가 감지된 미술시장에 왕성한 의욕과 신선한 시각으로 무장한 새 리더가 한국 시각예술의 새 문화를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문화예술은 속성상 온고(溫故)보다는 지신(知新)에 목말라한다. 실험적 접근으로 문화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는 창작자와 예술인은 그 자체로 보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이라 할 남다른 문화콘텐츠는 한국 경제의 새 수원지(水源地)가 될 수 있다. 문학 출판 미술 음악 등 문화예술계 패스파인더(선도자라는 뜻)들을 통해 틀을 깨는 창의정신의 면면을 들여다본다.김선정 광주비엔날레 신임 대표(52)는 아버지(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와 절친했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 선생을 1991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다음해 백 선생의 추천으로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큐레이터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온갖 것에 덧씌워진 미술의 난해한 가림막을 제거해 누구나 공감하고 즐기는 ‘시각예술의 대중화’를 구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세계적인 큐레이터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한국미술을 국제무대에 알리는 데도 팔을 걷어붙였다. ‘미술기획의 마술사’를 꿈꾸며 25년간 숨가쁘게 달려온 그가 한국미술 권력의 한복판에 섰다.뉴욕 프랫인스티튜트와 미국 미시간주 크랜브룩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한 김 대표는 100여 개 국내외 전시를 기획할 정도로 해박한 미술 이론과 현장 실무 능력을 갖춘 ‘미술계 여걸’로 통한다. 그의 큐레이팅을 거쳐간 작가만도 설치작가 이불, 서도호, 양혜규, 김범, 박찬경, 백승우 등 수백 명에 달한다.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커미셔너를 맡은 그는 당시 한국 현대미술의 집약된 개성과 힘을 보여준 동시에 기획자의 목소리가 가장 뚜렷한 전시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에는 군사독재의 잔재이기도 했던 기무사 터(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아트축제를 열어 정치와 미술의 상관관계를 풀어보기도 했다. ‘서울 미디어시티’(2010)와 광주비엔날레(2012)에서 감독을 맡았을 때는 관람객 40만 명을 끌어모을 정도로 대중친화적 기획력을 과시했다. 2012년부터 매년 8월에 강원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에서 여는 기획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분단시대 미술의 역할과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김 대표의 기막힌 스토리와 기획력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그는 “단순히 작가의 작품을 나열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과 취향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가며 작가와 대화하는 방식을 즐긴다”고 했다. 마치 영화를 연출하듯 작가들과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고 전시 개념과 스토리를 서서히 형성해나간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작가의 작업 공간을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하다”고 말했다.“작가의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작품 제작현장을 깊게 드러내기 위해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희열 그 자체입니다.”그의 차별화된 큐레이팅은 자연스레 ‘전시기획의 한류’로 연결되고 있다. 200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미술관과 휴스턴미술관에서 대규모로 연 한국 현대미술전은 그를 단번에 국제적 큐레이터 반열에 올려놓았다. 2015년 12월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 홍콩 베이징에서 잇달아 개최한 ‘불협화음의 하모니’전, 작년 모리미술관 기획전 ‘롯폰기 클로싱’에서 한국 큐레이팅의 저력을 과시했다. 지난해에는 덴마크 아루스에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수출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 전시 공간에서 제대로 소개하는 큐레이터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의 미술정책이 작가 지원에만 머물지 말고 기획자 지원에도 신경써야 한다는 얘기다.그의 머릿속엔 늘 한국 현대미술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미술은 그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국제적으로 훨씬 저평가받고 있어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드라마·영화·가요·스포츠 등까지 넓게 퍼져 있는 한류가 미술에도 불어야 하지만 막연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지요.” 그는 이를 위해 미술계 체질을 개선하고 도화선이 될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광주비엔날레 행사에 대한 개인적 포부도 밝혔다. 광주비엔날레가 급속한 성장을 해오느라 놓친 부분이 있다는 그는 “그동안 갈고닦은 기획력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행사,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소프트웨어 인재 30만 명을 양성하자고 외친 게 벌써 10년째입니다. 바뀐 게 없어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드라이브를 걸어야 합니다.”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SW)산업협회 회장(62·비트컴퓨터 회장·사진)이 지난 2월 6년 만에 퇴임했다. 오랜 기간 협회장을 맡아 큰 아쉬움이 없을 것이란 예상은 한마디에 무너졌다. 15일 서울 서초동 비트컴퓨터 사옥에서 만난 조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작년 기준으로 SW 관련 학과 졸업생이 매년 1만3000명가량 배출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은 3분의 1 수준에 그쳐 인력난이 여전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정부는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위해 관련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조 회장은 잘라 말했다.“인도는 초등학교 전 학년에서 소프트웨어 과목 수강이 필수입니다. 일본은 중학교 3년간 55시간, 고등학교 3년간 70시간의 정보과목을 이수해야 합니다. 우리도 중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고 올해부터 초등학교 5~6학년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이 수준에 안주해서는 뒤처지게 됩니다. 2015년 이후 35개까지 늘어난 SW 중심대학을 적극 확대하는 등 1년에 최소 5만~6만 명의 SW 인력을 배출해야 경쟁할 수 있습니다.”의료정보 전문기업인 비트컴퓨터를 설립한 조 회장은 한국 벤처업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인하대 재학 시절인 1983년, ‘국내 대학생 벤처 1호’로 출발해 30년 넘게 업계에서 살아남은 그다. 2013년에는 대기업 계열사 대표가 아닌, 벤처인으로는 처음으로 SW산업협회장에 올랐다. 1988년 협회 창립 당시부터 함께했던 조 회장은 두 차례 회장직을 연임했다.조 회장 재임 기간 SW산업협회는 발전을 거듭했다. 2012년 1123개에 그쳤던 회원사는 2019년 1849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37명이던 협회 직원 수도 2018년 67명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그는 “외형적인 성과를 이뤄냈지만 수년간 역량을 쏟은 소프트웨어진흥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퇴임 소회를 밝혔다.조 회장은 “한국 벤처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제2의 벤처붐을 조성하려면 규제 철폐가 필수”라고 했다. 그는 “일시적인 실험에 그치는 규제 샌드박스가 대표적인 희망고문”이라며 “전면적인 네거티브 규제 확대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에서 규제 샌드박스에 신청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그는 미래 인재들에게 ‘창업 정신’을 당부했다. 조 회장은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지 10년 만에 모바일 사회로 변모했다”며 “10년 뒤에는 현재 유망 직업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청년들이 소모적인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 벤처와 스타트업에 도전해야 할 시기”라는 조언도 했다.글=장현주/사진=강은구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