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대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 위해 주택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강남구.  /연합뉴스
정부가 임대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 위해 주택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강남구. /연합뉴스
정부가 주택 매매처럼 전월세 거래도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임대인의 전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향후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임대인은 전월세 계약을 맺을 때 계약기간과 임대료 등 계약내용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그동안 임대소득세를 내지 않던 임대인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야 할 전망이다.

전월세 거래도 신고 의무화

2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전월세 신고제 도입을 위해 학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지난 19일 한국주택학회가 연 ‘주택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 정책 세미나에선 전월세 신고제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그간 임대료와 임대소득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임대소득의 공정 과세가 불가능했다”며 “전월세 신고제를 통해 임대차시장의 거래 정보를 투명화하고, 실거래 기반의 과세를 통한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 추진…임대소득 과세 본격화될 듯
주택 매매 거래에 대한 실거래가 신고 제도는 2006년 도입돼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등 실거래가 기반의 과세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임대차 거래와 관련해서는 이런 신고 의무가 없어 정부가 모든 전월세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감정원이 주택임대차정보시스템(RHMS)을 통해 전월세 거래 미신고 임대주택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8월 기준 전국에서 임대 목적으로 사용하는 주택 673만 가구 중 확정일자나 세입자의 월세 세액공제 등을 통해 공부상 임대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주택은 153만 가구(22.8%)에 그쳤다. 나머지 520만가구(77.2%)는 임대차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

한 세무 전문가는 “보증금이 적은 임차인은 손실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반대로 고액인 경우는 증여세 조사 등을 피하기 위해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임대차(전월세) 거래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내에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 법 제3조 ‘부동산 거래의 신고’ 대상에 주택 ‘임대차’ 거래를 추가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르면 상반기 의원 입법 형태로 개정안을 발의해 법제화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 대상은 우선 주택으로 한정하고, 오피스텔과 고시원 등 비주택은 신고 의무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 만큼 내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면서도 “의원 입법에 대해선 정부가 컨트롤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임대소득 과세 본격화”

부동산 전문가들은 추후 이 제도가 시행되면 2006년 매매 실거래 신고제 도입 못지않게 임대차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모든 주택 임대인의 월세 수입에 대해 과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세수는 증가하겠지만 세부담 증가로 인한 민간 임대주택 시장 축소, 세부담 전가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필 세무사는 “최근 종합부동산세 인상, 공시가격 상승 등으로 임대인의 보유세 부담이 커진 가운데 임대소득세까지 부과되면 집주인의 세금 부담이 급증한다”며 “임대인이 느끼는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여기에 올해 소득세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았던 연간 2000만원 이하의 주택임대소득도 과세범위에 들어갔다”며 “늘어난 세부담이 모든 임대인에게 적용되면 그만큼 부담도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0만원 이하의 임대 소득에 대해선 15.4%(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로 분리과세한다. 다만 1가구 1주택자가 보유하고 있는 공시가격 9억원 이하의 주택에서 발생하는 임대수입은 여전히 비과세다. 전세일 경우 3주택 이상(보증금 합계액 3억원 초과 시) 보유할 때 과세 대상이 된다. 이 경우 보증금은 간주임대료로 전환해 계산한다.

민간 임대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장 집값이나 전셋값에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시차를 두고 민간 임대주택 시장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민간 부문의 전월세 임대 물량 감소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세부담을 전가하면서 전월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특히 전세 수요가 많은 지역의 경우 거래 신고로 늘어난 세부담을 이사비 등 다양한 형태로 임차인에게 새로 전가하는 양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단기적으로 전월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며 “투기과열지구 등 일부 지역부터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역효과 등 문제점을 파악해 보완하면서 순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윤아영/선한결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