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배당 규모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전체 상장사의 지난해 실적에 대한 배당금 총액은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16조6488억원 이후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상장사 배당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매출 30대 기업의 배당성향(배당금/순이익)은 40%대에 육박해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주이익 환원이란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이익 증가는 주춤한데 배당만 빠르게 늘어 기업의 투자여력과 장기적 경쟁력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예금금리보다 높아진 배당수익률…'순이익 2배' 배당으로 쏜 기업도
글로벌 수준에 가까워진 배당성향

포스코대우는 지난 1일 주당 600원을 배당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순이익이 1157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줄었지만 배당은 617억원에서 740억원으로 20% 늘었다. 배당성향은 35.1%에서 47.7%로 높아졌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니켈 광산 손상차손 등 일회성 요인으로 순이익이 줄었다”며 “일회성 요인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올해 주당 배당금은 800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순이익이 줄어든 기업까지 배당 확대에 동참하거나 높은 배당을 유지하면서 국내 매출 상위 기업들의 배당성향이 급상승하고 있다. 현대차 배당성향은 2017년 26.8%에서 작년 70.7%로 뛰었고, 포스코(47.3%), KT(39.2%), LG화학(31.2%), 기아차(31.2%) 등도 높은 배당성향을 보였다. 139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289억원을 배당한 SK네트웍스의 배당성향은 215.7%에 이른다.

대신증권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증시의 배당성향 추정치는 47.1%, 신흥국 증시는 35.4%였다. 한국 전체 상장사의 배당성향은 20.3% 수준이지만, 매출 30대 기업(지주·금융회사 제외) 중 결산배당 공시를 한 22개 기업의 배당성향은 평균 37.1%에 달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등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가들이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한편 배당에 관한 기업 경영진의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기예금보다 높아진 배당수익률

배당수익률(주당 배당금/주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주가는 급락했는데 배당이 늘었기 때문이다. 20개 주요 기업의 지난해 종가 기준 보통주 배당수익률(시가배당률)은 2.7%로, 12월 말 은행 정기예금 평균 금리(2.05%)는 물론 미국 S&P500지수 편입종목의 배당수익률(2.1%)을 웃돌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보통주 배당수익률이 3.66%로 처음 3%대에 올랐다. 주당 배당금이 2017년 850원에서 작년 1416원으로 늘어난 반면 연말 종가는 5만960원에서 3만8700원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 주가가 23% 오르며 현재 배당수익률이 2.9%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포스코는 6년 동안 8000원을 유지했던 주당 배당금을 지난해 1만원으로 올리면서 연말 배당수익률이 4.1%를 찍었다. 롯데케미칼(3.8%)과 KT(3.7%), SK텔레콤(3.7%), 현대차(3.4%), 포스코대우(3.3%) 등도 3%를 넘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배당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상장사 영업이익은 작년(추정치 199조원)보다 크게 줄어든 179조원으로 전망되는데, 행동주의 펀드 등의 압력에 배당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과감한 투자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성장 전략”이라며 “지나친 배당 확대는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