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류층에 명문대 출신이면서 1990년 옛 소련의 우표에 등장한 인물이 있다. 명문 케임브리지대를 나와 영국 해외정보국(MI6)에서 일했던 킴 필비(1912~1988)다. 왜 소련은 필비의 ‘영웅적 활약’을 기리며 우표까지 발행했을까.

1930년대 공산주의에 심취한 케임브리지 동창생 다섯 명이 소련에 포섭됐다. 이 중 필비는 MI6 미국과장까지 올라, 미 CIA·FBI와 공유한 2차 세계대전 정보를 소련에 넘겼다. 도널드 매클린도 영국 외교부에서 일하며 6·25전쟁 때 트루먼 미 대통령이 맥아더의 원폭 요청을 불허할 것이란 결정적 정보를 빼돌렸다.

이들이 ‘케임브리지 5인방’이다. 나중에 소련 측 연락관의 실수로 간첩 행적이 들통나자, 필비 등 세 명은 소련으로 탈출해 열렬한 환대와 평생연금을 받았다. MI6에서 이들을 색출하는 과정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그려져 있다.

케임브리지 5인방이 도주로 간첩임을 자인한 반면, 미 국무부 내 스파이 엘저 히스(1904~1996)는 평생 ‘매카시즘 희생자’ 행세를 했다. 히스는 1945년 얄타회담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 곁에서 소련 스탈린에게 유리하게끔 유도했다. 함께 스파이 활동을 했던 휘태커 체임버스가 그의 행적을 폭로했지만, 히스는 약 4년간 복역한 뒤 평생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사, 저술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미 국가안보국이 1940년대 소련 전문(電文)을 감청해 해독한 ‘베노나 문서’가 1995년 공개돼 암호명 ‘알레스’라는 히스의 행적이 들통났다.

냉전 종식 이후 옛 공산권 문서로 스파이가 발각되는 일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옛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문서다. 여기서 브란트 총리의 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 간첩이고, 동독이 서독 요인들의 여비서를 미남계로 포섭했으며, 최소 2만~3만명의 스파이가 활동했음이 밝혀졌다.

1950년대 ‘매카시 선풍’도 무수한 반발과 비난을 샀지만, 40여 년이 지나 KGB 문서에서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요즘도 매카시즘을 무분별한 마녀사냥쯤으로 여기지만, 실제 스파이의 암약을 경고하는 의미로 달리 쓰여야 마땅하다.

‘발트해의 진주’라는 라트비아에서 최근 ‘스파이 리스트’가 공개돼 발칵 뒤집혔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는 옛 KGB 본부가 있던 곳이다. 1991년 독립할 때 KGB가 남겨둔 서류에 있던 소련 정보원과 협력자 4141명의 명단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엔 전직 총리, 대법원장, 성직자, 대학 총장 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고 한다.

라트비아 의회는 ‘과거 청산론’과 ‘KGB 역공작론’으로 갈라져 28년간 논란을 빚었다. 진실은 두고두고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70여 년 남북 대치 상태인 한국은 어떨까. 간첩 논란이 마녀사냥인지, 사실인지는 통일 후에는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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