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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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열린 넥센타이어 사내 탁구대회에 ‘의문의 참가자’가 등장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대회 시작 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주인공은 강호찬 사장(48). 강 사장은 부하직원과 함께 복식조를 꾸려 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본선 1라운드 탈락. ‘사장님’이라고 슬쩍 눈치를 보며 허공에 스매싱을 날리는 직원은 없었다는 전언이다. 넥센타이어의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대료 대신 선택한 직원과의 소통

서울 방배동에 있는 넥센강남타워 1층에는 증권회사가 입주해 있었다. ‘금싸라기 땅’ 강남 한복판의 알짜배기 자리여서 연간 임대료가 수억원에 달했다. 넥센타이어로선 ‘짭짤한’ 수익원이었다.

강 사장은 당장의 임대료보다 직원들의 복지를 택했다. 증권사를 내보내고 건물 1층에 열린 문화 공간 ‘엔토크홀(N Talk Hall)’을 마련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이 공간은 임직원들의 휴식과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한편에 탁구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 것도 강 사장이다. 소문난 스포츠 마니아인 그는 과거 겨울이면 직원들과 함께 스키장을 찾아 스노보드 타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챙겨야 할 업무가 늘어나자 오랜 시간 사무실을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운동이 탁구였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잠깐 짬을 내 하기에 제격인 운동이었다.

강 사장은 요즘도 휴식시간이면 1층으로 내려가 탁구채를 쥐고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건물 옥상에 마련한 족구장도 강 사장의 주요 ‘출몰 지역’ 중 하나다.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운동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강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앞뒤가 바뀌었다. 소통이라는 목적을 갖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소통이 된 것이다.”

공감으로 이룩한 27년 연속 노사 무분규

강 사장의 소통 능력과 수평적 리더십은 노사 관계에서 빛을 발했다. 넥센타이어는 지난해까지 27년 연속 노사 무분규를 기록했다. 다른 제조업체들의 경영진과 강성 노조가 소모적인 ‘샅바싸움’을 벌이는 동안 넥센타이어는 선진적인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체력을 비축했다.

직원들이 처음부터 강 사장을 반긴 건 아니었다. 2001년 회사에 입사한 강 사장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친근함보다 적개심이 컸다. 오너 2세를 바라보는 시기와 질투의 눈길도 있었다. 강 사장은 특유의 소탈함으로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정장 대신 작업복을 입고 깔끔한 사무실이 아니라 고무 냄새가 진동하는 공장으로 출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직원들도 하나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강 사장은 그렇게 ‘같은 일을 하는 회사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강 사장은 직원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중시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직원들과 만날 때는 사장이라는 ‘계급장’부터 뗀다. 시시콜콜한 연예인 얘기까지 웃으며 주고받는다. 노조와 협상할 땐 회사의 사정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먼저 털어놓는다. 현장 근로자의 고충은 자신의 일처럼 귀담아듣는다.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늘어놓다 보면 경영진과 노조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접점이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강 사장은 직원들에게 ‘왜 일을 해야 하고, 왜 넥센타이어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본인 스스로도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되뇐다. 그는 넥센타이어의 모든 구성원이 ‘업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공유할 때 회사가 발전하고 직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는 결실을 거두는 해

강 사장은 최근 몇 년간 열심히 씨앗을 뿌렸다. 2015년 약 1조원을 투입해 체코 자테치시 65만㎡ 부지에 신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중앙연구소를 건립하기 위해 첫 삽을 떴다. 지난해 유럽과 미국의 연구개발(R&D)센터도 확장 이전했다. 넥센타이어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작년 3분기 기준 3.4%)은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 등 국내 타이어 3사 중 가장 높다.

강 사장이 뿌린 씨앗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체코 공장은 지난해 9월부터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올해 말까지 400만 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는 것이 1차 목표다.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 프랑스 등과 가까운 체코 공장은 넥센타이어의 유럽 시장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전망이다.

지속적인 R&D 투자 확대는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졌다. 넥센타이어는 지난해 3분기 자동차업계의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도 타이어 3사 중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522억원)이 늘어났다. 일반타이어보다 수익성이 좋은 초고성능타이어(UHPT) 판매 비중이 늘어난 덕이다.

휠 크기와 속도 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인 UHPT는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생산할 수 있다. UHPT 판매 비중은 타이어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통하기도 한다. 넥센타이어의 UHPT는 타이어 품질을 중시하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 사장은 그간 뿌렸던 씨앗의 결실을 거둬 넥센타이어를 글로벌 타이어 기업으로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강호찬 사장 프로필

△1971년 부산 출생
△1990년 부산고 졸업
△1999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대유리젠트증권 입사
△2001년 넥센타이어 입사
△2003년 넥센타이어 경영기획실 상무
△2006년 넥센타이어 영업본부 부사장
△2009년 넥센타이어 영업부문 사장
△2010년 넥센타이어 전략담당 사장
△2016년~ 넥센타이어 사장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왼쪽)이 넥센강남타워 1층에 있는 문화공간에서 직원들과 탁구를 즐기고 있다.  /넥센타이어 제공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왼쪽)이 넥센강남타워 1층에 있는 문화공간에서 직원들과 탁구를 즐기고 있다. /넥센타이어 제공
■강 사장은 '마케팅의 귀재'…본업 무관한 국내 프로야구 9년간 후원

올해는 英 프로축구 맨시티와 인연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은 ‘마케팅의 귀재’로 불린다. 지금의 넥센타이어를 만든 데는 강 사장의 도전적인 스포츠 마케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넥센타이어가 2010년 프로야구단 서울 히어로즈와 처음 손을 맞잡을 때만 해도 둘의 만남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눈길이 더 많았다. 삼성과 SK, LG, 롯데 등 야구단을 운영하는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넥센타이어의 매출 규모가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모터스포츠 후원에 집중하던 다른 타이어업체와 달리 본업과 동떨어진 야구단을 후원하는 것이 불필요한 투자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 사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은 이듬해 넥센 히어로즈의 성적이 ‘꼴찌’로 떨어졌음에도 후원 계약을 연장했다. 선수를 키워내고 강팀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강 사장의 신념도 후원 계약을 이어가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익 창출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도 기업의 의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는 기다림에 보답했다. 꾸준히 성적을 끌어올려 2014년에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강정호와 박병호 등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스타플레이어를 키워내기도 했다. 야구단이 승승장구하자 넥센의 브랜드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타이어업계 후발주자로 국내 교체용 타이어(RE) 시장에서 고전하던 넥센타이어가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도 야구단 후원 시점과 맞물렸다.

지난해를 끝으로 서울 히어로즈와의 후원 계약을 종료한 넥센타이어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와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유럽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시점에서 명문 축구팀 후원이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케팅으로 맺은 인연이 투자 유치로 이어지기도 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는 2017년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 인베스트먼트 컴퍼니를 통해 넥센타이어에 투자를 결정했다. 넥센타이어는 자산 규모가 1200억달러(약 134조원)에 달하는 무바달라가 투자한 최초의 타이어업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