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상품·서비스 가격 오름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무상복지 확대가 물가 상승률을 억제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은의 물가 목표 도달이 늦어지고, 결과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이 지연되는 데는 낮은 공공서비스 가격이 ‘착시 효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한은은 8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실물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지속했지만 국내 근원물가 오름세는 둔화됐다”며 “올 들어 주요국 근원물가가 크게 오르는 점에 비춰봐도 차이가 크다”고 밝혔다. 근원물가는 가격 등락이 심한 농산물, 에너지 등을 제외한 지표로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파악하기 위해 쓰인다. 통상 경제 성장세가 이어지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확대되면 근원물가 오름세도 가팔라진다. 그러나 올해 1~9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1.2%에 그쳤다. 한은은 이를 무상 교육,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개별소비세 인하 등 복지정책의 영향으로 공공서비스 물가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근원물가 구성 품목별로 보면 개인서비스(2.7%), 집세(0.8%), 상품(0.3%) 등은 올랐지만 공공서비스는 1.2% 떨어졌다.

한은은 가계부채 확대 등 금융 불균형 문제는 통화정책보다 경제당국의 거시 건전성 정책으로 먼저 대응해야 한다는 뜻도 우회적으로 밝혔다. “금융 불균형은 거시 건전성 정책만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와 통화정책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병존한다”며 “양측 견해 모두 거시 건전성 정책으로 우선 대응하고 불균형이 심해지면 통화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