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2048년 한국, 어떤 나라가 돼 있을까
1988년 7월 휴대폰이 처음 개통됐을 때 지금 같은 초고속 멀티미디어 시대를 상상한 이는 없었다. 대당 400만원(현재가치 약 1200만원)짜리 ‘벽돌폰’ 자랑과, 여기저기서 “어, 난데!” 소리가 초창기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남들이 상상도 못한 것을 간파한 이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마흔인 1980년 관직에 입문한 오명 전 체신부 장관은 전(全)전자교환기, 정보통신망 등의 기초를 닦았다. 통신업에서 미래를 확신한 고(故) 최종현 SK 회장은 “정보통신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감도 안 오지만 21세기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진전될 것이다. 반도체와 함께”라고 자신했다(1995년 국가경쟁력위원회 발언). 이런 ‘혜안(慧眼)’의 결과물이 IT강국이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을 걸로 여기면 큰 오산이다. 1988년 하면 서울올림픽, 3저(低) 호황, 마이카 붐, 민주화 등이 오버랩된다. 먹고살 만해진 동시에 억눌린 욕구도 일제히 분출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물태우’로 더 자주 불렸다. 그러나 갈수록 노태우 시대를 재평가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가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인천공항, KTX, 서해안고속도로, 건강보험 전 국민 확대, 북방정책 등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보면 분명해진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건국 이래 70년간 리더들의 혜안과 국민의 땀과 눈물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합작품이다. 이승만의 농지개혁과 한·미동맹,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와 중화학 육성, 전두환의 초고속통신망과 노무현의 한·미 FTA 결단에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엔 무모해 보이거나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지만 지나고 보니 선견지명이었고 후세가 그덕을 보는 것이다. 올 여름 폭염·가뭄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 이명박의 4대강 사업과 전혀 무관할까.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거쳐 2018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은 무엇일까. 30년 후면 2048년, 즉 대한민국 탄생 100년이다. 먼 미래 같지만 압축성장을 해온 한국인에게는 물리적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2050년 통일 한국이 세계 2위 부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게 벌써 11년 전이다. 1인당 소득이 9만294달러로 미국(9만1683달러) 다음이 될 것이란 전망은 조금 황당하지만 듣기 싫지는 않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란 미국 과학자 앨런 케이의 말처럼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를 실현하는 게 리더들의 역할이다.

기업인과 ‘기업가(entrepreneur)’가 다르듯, 정치인(politician) 정치꾼(politico)과 ‘정치가(statesman)’는 천양지차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자질로 미래를 내다보며 현실 변혁을 지향하는 열정, 현실에 대한 정확한 식견, 결과 책임에 대한 자각을 꼽았다. 지금 한국에 그런 정치가가 있을까. 설사 있더라도 이런 정치풍토에서 리더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고령화와 저성장을 ‘상수(常數)’로 여기고,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무기력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간다. 해법을 찾아야 할 정치리더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정치인들의 시계(視界)는 30년은커녕 다음 선거에 갇혀 있다. 정치가 과거만 파먹고 상대방 죽이기를 본업으로 여기니, 사회 곳곳에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가득하다.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담론도 미래비전도 안 보이는 이유다.

올해 20주기인 고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21세기에는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기업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반면 정치인은 국민들이 다 보는 것도 못 본다. 좌우를 막론하고 무능만 노출하면서 미래세대 삶까지 결정짓겠다는 것은 치명적 자만이다. 이대로라면 2048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돼 있을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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