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실험, 이번엔 첫 독자 호텔
“‘레스케이프(L’Escape)’는 국내외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 소믈리에, 바리스타, 바텐더 등과 함께 365일 내내 새로운 이벤트와 경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신세계그룹의 첫 독자 브랜드 호텔인 레스케이프의 총지배인을 맡은 김범수 신세계조선호텔 상무는 26일 서울 회현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레스케이프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호텔”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1995년 6월 웨스틴조선호텔을 인수하면서 호텔업에 진출한 신세계는 레스케이프를 시작으로 독자적인 호텔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신세계의 호텔 체인은 레스케이프 개관으로 서울과 부산의 웨스틴조선호텔, 반포의 JW메리어트 호텔 등 5개로 늘었다.

◆석 달마다 바뀌는 레스토랑

다음달 19일 문을 여는 레스케이프는 프랑스 파리를 콘셉트로 한 부티크 호텔이다. 기존 호텔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붉은색을 위주로 한 화려한 패턴, 꽃 문양의 캐노피 장식 등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지상 25층에 204개 객실과 중식당, 양식당, 티살롱, 커피스테이션, 바, 피트니스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10개 타입의 객실 중 가장 공을 들인 ‘아틀리에 스위트’의 숙박요금은 1박에 52만원대(세금 별도)에 달한다.

정용진 부회장(왼쪽). 김범수 상무
정용진 부회장(왼쪽). 김범수 상무
이날 간담회에선 푸드&베버리지(F&B) 공간이 공개됐다. 미식 블로거 출신으로 신세계가 운영하는 주요 식음공간의 기획을 주도해온 김 상무답게 F&B 차별화에도 초점을 맞췄다.

중식당은 홍콩 레스토랑 모뜨32와 제휴했고, 바는 영국 런던의 택소노미, 티살롱은 방배동의 베이커리 메종엠오, 카페는 부광동 헬카페와 협업해 운영한다.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갈라 디너’는 가격을 합리적으로 낮춰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용진의 실험, 이번엔 첫 독자 호텔
양식당은 1년마다, 갈라디너는 3개월마다 협업하는 레스토랑을 바꿔 주기적으로 새로운 메뉴를 내놓을 예정이다.

김 상무는 “호텔 음식은 비싸다는 선입견을 깨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대신, 출혈경쟁으로 하향 평준화된 숙박가격은 현실화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호텔에선 흔하지 않은 서비스도 여럿 도입했다. 호텔 9층을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펫프렌들리 공간으로 꾸몄고, 향수 등 호텔 자체상품(PB)을 판매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 무인체크인 서비스도 제공한다. 김 상무는 “세계를 다니며 보고 느낀 F&B와 문화 트렌드를 호텔에 집약했다”며 “1년 내내 새로운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혁신’ 호텔에서도 이어질까

신세계의 독자 브랜드 호텔사업은 정용진 부회장 뜻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 호텔신라 등이 독자적인 브랜드로 호텔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신세계는 글로벌 호텔체인과 제휴해야 하는 형태였다. 글로벌 브랜드를 사용하면 해외 고객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지만 해당 브랜드의 매뉴얼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기존의 호텔 브랜드보다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통해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에게 맞는 공간을 선보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가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호텔사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호텔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유통 분야에서 늘 새로운 시도로 변화를 선도해온 정 부회장이 호텔 사업에서도 혁신을 추진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신세계가 조만간 제2, 제3의 레스케이프를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신세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호텔과 부티크호텔 등 다양한 호텔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