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2일 금융감독원은 감독·검사 업무를 전면 쇄신하는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 TF 권고안’을 발표했다. 창구규제 등 이른바 ‘그림자 규제’ 관행을 폐지하고, 행정지도 근거를 명확히 하는 내용이 핵심 대책으로 담겼다. 하지만 창구지도와 행정지도는 여전하다는 것이 금융회사의 전언이다. 손쉽게 일을 하려다 보니 법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는 ‘그림자 규제’를 지속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는 이 같은 후진적 감독 시스템이 민간 금융권에 대한 ‘관치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행정·창구지도' 남발… 법에 없는 '그림자 규제'에 금융사 꼼짝 못 해
사라지지 않은 창구지도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설치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은행법,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예금자보호법 등 관련법에 근거해 금융회사를 감독·검사한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일도 한다. ‘그림자 규제’로 불리는 행정지도와 창구지도가 대표적이다.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 분야에선 과거부터 비공식적인 감독과 통제를 통한 ‘그림자 관치’가 대세였다”며 “이렇다보니 법률에 불명확하게 명시돼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제가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이 중 금융회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창구지도다. 창구지도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법적·행정 용어는 아니다. 금감원은 현 정부 들어 구두지시를 통한 창구지도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공식 설명한다. 하지만 금융권의 설명은 다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금감원을 방문하면 명확한 규정이 없는데도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는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이나 전시성 검사 등도 ‘광의의 창구지도’로 보고 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가계신용대출 금리를 연 20% 이상 적용하는 저축은행은 지역서민금융회사를 표방하는 저축은행의 존재이유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현행 법률상 최고금리는 연 24%다. 신용도가 낮으면 연 20% 이상 금리가 적용된다는 것이 저축은행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의 발언은 앞으로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최고금리는 연 20%라는 ‘시그널’이었다고 금융계는 해석했다.

남발되는 당국의 행정지도

금융계는 금감원의 행정지도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행정지도는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자발적으로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지침을 뜻한다. 통상 공문 형식을 취하면 행정지도, 구두지시라면 창구지도로 구분한다.

금감원은 올 들어서 11건의 행정지도를 금융사에 내렸다. 은행권의 고정금리 대출비중을 현행 30%에서 연말까지 40%로 확대하라는 ‘가계부채 개선대책’이 대표적인 행정지도다. 개인 간(P2P) 대출에 개인투자 한도를 연간 2000만원으로 정한 ‘P2P 가이드라인’도 금감원이 지난 2월 내린 행정지도다.

행정지도는 창구지도처럼 금융사의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조치일 뿐 강제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A금융사 관계자는 “법률에 근거한 공식 조사에 비해 행정·창구지도는 사실상 그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금융사에 더 큰 부담이자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털어놨다.

금융당국도 행정·창구지도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행정지도는 법적근거 없이 하는 것으로 최소화하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금융사에 대한) 강요나 불이익으로 연결돼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무차별 조사’에 금융사 부담 커져

금감원의 감독·검사 방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B금융사 임원은 “금감원이 ‘환부만 도려내는’ 방식의 조사보다는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무차별 조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 방침이나 특정 이슈에 편승해 지나치게 많은 인력을 투입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최흥식 전 원장의 사퇴 원인이 된 ‘하나은행 채용청탁’ 조사에서 20여 명 규모의 검사단을 구성해 조사하기도 했다. 대개 한 곳의 금융사를 검사할 때 3~4명가량의 인력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C금융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작정하고 ‘먼지털기식’ 표적 조사를 하면 걸리지 않을 금융사가 없다”고 토로했다.

조사 시기 및 빈도에 대한 금융사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D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예정도 없이 방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내일부터 조사하겠다’고 통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경민/윤희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