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소모적 경쟁보다 미래산업 개척… 3M, 근무시간 15%는 창조적 활동
회사의 심장을 도려낸 것입니다.” 2011년 필립스의 반도체 사업부 매각에 대해 이런 의견이 있었다. 당시 헤라르트 클레이스테를레이 최고경영자(CEO)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특정 사업 분야가 기업의 심장이 될 수 없다”며 “목표를 향한 조직원의 열정이 진짜 심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필립스의 목표는 단 하나”라고 했다. 혁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이 대화에 125년 된 글로벌 기업 필립스의 생존 비결이 들어 있다. 2000년대 초 필립스의 가전 반도체 사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한국·일본업체에 밀렸다. 그룹은 구심점을 잃고 표류했다. 클레이스테를레이 CEO는 대대적인 변신에 들어갔다. 2001년 통신 보안 모바일부품 모니터 사업에서 손을 뗐다. 2003년엔 항공, 2006년엔 반도체, 2007년엔 휴대폰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헬스케어 소비자가전을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필립스는 소모적인 경쟁의 늪에서 빠져나와 미래 유망 사업을 개척하는 방향으로 변신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필립스는 내재화한 혁신 역량이 있었기에 변신에 성공하며 100년 이상 생존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축적해온 연구개발(R&D) 자산과 빠른 혁신을 강조하는 기업문화가 그것이다. 필립스 브랜드의 슬로건은 ‘혁신과 당신(Innovation and You)’이다.

글로벌 회사 3M도 변화에 성공한 대표적 기업이다. 3M에는 ‘15% 룰’이 있다. 직원들이 창조적인 활동에 근무 시간의 15% 정도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룰이다. 구글은 3M의 15% 룰을 본떠 ‘20% 룰’을 만들기도 했다. 3M을 대표하는 스카치테이프 포스트잇 등 상품 모두 15% 룰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3M은 116년의 역사를 관통하며 광산업체에서 생활·의료용품업체로, 다시 첨단·산업소재업체로 수차례 변신에 성공했다. 세계에서 출원한 특허는 10만 개를 넘어섰고, 연간 약 3000개씩 증가하고 있다. 연간 300억달러(약 32조원) 이상의 3M 매출 가운데 30% 이상이 최근 5년 안에 판매하기 시작한 신제품에서 나온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