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입삼 전 전경련 부회장 별세, 의료보험 산파 역할… 기업발전사(史) 증인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기반을 마련한 김입삼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 부회장이 7일 영면했다. 향년 95세.

1922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난 김 전 부회장은 함경북도 경성고보(鏡城高普)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립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런던정경대 대학원도 수료하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1세대 유학파’였다.

1959~1960년 이승만 정부에서 산업개발위원회 보좌위원으로 일하며 경제개발계획을 세웠다. 윤보선 대통령 취임 후에도 내각 기획통제관실 기획조정관으로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에 참여했다. 이후 1961년 출범한 민간 경제단체 전경련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국장과 전무를 거쳐 1971년부터 1981년까지 11년간 상근부회장을 맡았다. 고(故) 이정림·김용완·홍재선·정주영 회장 등 네 명의 전경련 회장을 보좌했다. 이 재임 기간 기록은 깨지지 않아 ‘전경련 최장수 부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국가 수출촉진위원회 창설(1963년), 한·일 경제협력기구 창설(1965년), 외자 유치를 위한 한국개발금융회사(KDFC) 설립(1967년), 주식 대중화 및 기업공개 추진을 위한 자본시장 육성법 제안(1968년) 등의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77년에는 의료보험제도 도입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했다. 사업주가 보험료의 일정 부분을 분담하도록 기업을 독려했다. 현재의 의료보험 형태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998년 3월 30일자 한경에 실린 회고록 기사.  /한경DB
1998년 3월 30일자 한경에 실린 회고록 기사. /한경DB
전후 격동기의 한국 경제 및 기업 발전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의 회고록 《초근목피에서 선진국으로의 증언》(한국경제신문사 출판)에는 1961년 3월24일 첫 정·재계 회의가 열린 역사적 순간이 담겨 있다. 당시 서울 반도호텔 8층 장면 총리 집무실에서 장 총리를 비롯해 상공·재무장관 등 핵심 각료들과 한국경제협의회 김연수 회장(당시 삼양사 회장), 이한원 부회장(당시 대한제분 사장) 등 경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김 전 부회장은 회고록에서 “재계가 당당히 국사(國事)에 참여하는 주체로서 부상된 역사적 사건이며 훗날 ‘한강의 기적’의 초석을 마련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김 전 부회장은 1980년대 이후 한국기술투자 사장 및 대표이사, 삼천리 기술투자 주식회사 사장 및 대표이사, 전경련 상임 고문 등으로 활약했다. 1998년 3월부터 2년5개월간 한국경제신문에 ‘김입삼 회고록-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이라는 기고문을 연재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1호실(02-3010-2000)이며 발인은 9일 오전 9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세영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딸 김소임 건국대 교수, 아들 김양수 전 캔자스주립대 교수, 김양우 한성대 교수, 김양민 서강대 교수가 있다.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사위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