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인간을 닮은 AI' 헛된 꿈 아닌가
“환영합니다, 페퍼.” 일본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페퍼가 우리나라에 출현했다. 페퍼는 지난해 일본에서 1만 대밖에 팔리지 않았으며 현지 산업현장에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주요 전자 회사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계획을 유보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페퍼를 뒤늦게 한국의 은행 서점 병원 백화점 마트 영화관 등에서 도입했다고 잇따라 발표한 것이다.

미국의 병원에서는 두 군데밖에 쓰지 않고 있는 IBM의 인공지능(AI) 기반 암 진단 프로그램 ‘왓슨 온콜로지’를 한국의 병원은 여섯 군데나 쓰고 있다는 보도도 최근에 있었다. 왓슨이 실체가 없다는 의혹을 주요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2016년 초부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제기해온 상황이고 IBM이 자랑해온 MD 앤더슨센터의 왓슨 온콜로지 개발 사례는 병원이 700억원 가까이를 쓰고도 결국은 계약을 파기하게 됐다는 사실이 지난 2월 보도돼 충격을 준 바가 있는데도 말이다.

일본과 미국의 현실이 이런데도 우리나라가 왓슨과 페퍼를 유독 사랑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의 의사결정구조가 합리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왓슨이나 페퍼를 기업들이 도입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마케팅 효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처음에 페퍼를 구경하러 은행 서점 병원 백화점 마트 영화관에 몰리다가 곧 실망하게 될 것인데 이는 일본이 이미 경험한 일이다. 합리적이고 냉정한 미국의 병원들은 아직 실체가 불분명한 왓슨의 도입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일찌감치 일본 후지에다시(市) 공무원의 입을 통해 “페퍼가 대화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그냥 태블릿 컴퓨터로 쓴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투자은행 CLSA 직원은 “사무실 건물에 페퍼가 설치됐지만 이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그냥 움직이는 태블릿”이라고 일축했다. 미국의 의료 전문 언론 STAT는 지난 9월 IBM이 “과대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두 차례나 날렸다.

그럼 페퍼와 왓슨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페퍼와 왓슨 모두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지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 의미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라는 낭만적 인공지능관(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현실 문제에 인공지능 기법을 사용해 효과를 내려면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런 이해에 기반해 냉정하게 연구개발해야 한다. 영화 ‘그녀(Her)’, ‘엑스마키나’, 미국 드라마 ‘웨스트 월드’, 영국 드라마 ‘휴먼스’ 등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를 참고하는 것은 현실적인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라는 낡은 관념으로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도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합리적인 바둑 기계’로서의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이세돌이라는 인간 최고수를 이기는 성과를 낸 것이다. 항공 공학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라이트 형제를 비롯한 연구개발자들이 하늘을 나는 새를 모방하는 것을 멈추고 공기 역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공 비행’에 대한 탐구가 성공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뇌의 생물학적 과정을 모방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뇌가 해결하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생물학적 수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다.

인류는 언젠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에서 합리적 행동을 하는 인공지능으로 발전해온 역사를 이해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진화시켜 나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