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한·EU FTA의 10년 뒤를 생각한다
지난주 필자가 벨기에 브뤼셀을 다시 찾은 것은 제3차 한·유럽연합(EU) 포럼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과 양국 경제관계에 관해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과 EU가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한 것은 2007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1차 협상 이후 7월의 2차와 9월 3차, 11월의 5차 협상이 브뤼셀에서 개최됐다. 협상 자문위원이었던 필자는 브뤼셀 협상에도 매번 참여해 상품양허, 농산물, 지식재산권, 서비스, 비관세 등 여러 분야의 협상장을 오가며 협상팀을 지원했다.

한·EU FTA는 2004년 이후 우리 측이 EU 측에 먼저 협상을 제안한 이래 3년 동안 착실하게 준비해온 FTA다. EU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선진경제이고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5배 이상 큰 세계 최대 시장일 뿐만 아니라 개방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이끌 수 있는 대상이었기에 우리로선 놓칠 수 없는 FTA 상대였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모든 협상은 협상장에 앉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협상의 틀을 정하는 단계부터 샅바싸움이 시작되고 예상치 못한 의제가 불쑥 튀어나와 당황할 때도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상대 의도를 정확히 알기 어려울 수 있으며 한 분과에 속해 있어 전체의 큰 틀을 보지 못해 답답할 수도 있다. 10년 전 항상 비가 오는 브뤼셀의 호텔에서 이런 어려움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협상한 기억이 새롭다.

EU가 내세운 의제 중 통상의제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게 파악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전혀 새로운 개념도 있었다. 지식재산권의 경우 지리적 표시(GI)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이미 알려진 의제였지만 보호 범위를 주류뿐만 아니라 농산물에까지 확대해달라는 요청에 우리 농업의 GI 보호 범위와 효과를 가늠하고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전통적 표시(TE)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들고나와 당황했으나 WTO에서의 전례를 들어 거부한 적도 있다.

요즘 논란이 되는 동물복지의 경우 이것이 통상의제로 어떤 파급력이 있을지 예측하기 쉽지 않아 긴장했으나 결국 위생검역 분야에서 동물복지 이슈에 관해 적극 협력하기로 하는 선에서 봉합했다.

이 외에도 지역화, 저작인접권, 공연보상청구권 등 다양한 통상의제가 쏟아져 나왔고 표준, 적합성 인증방식, 원산지 분야에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협상 시작 10년, 잠정발효 6년이 지난 지금 한·EU FTA는 어디에 있는가. 발효 후 유럽 경제위기와 한국 기업의 왕성한 해외 투자에 따른 대(對)EU 직접 수출 감소로 우리의 EU 수출이 전반적으로 정체하기도 했으나, 수입처 다변화로 인한 한국 경제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대세계 무역수지흑자는 더욱 늘었고 양자 간 무역량 및 교역품목 확대와 함께 무역수지도 올 들어 거의 균형을 회복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EU FTA와 관련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협정문의 내용을 방어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넘어 동물복지, 지속가능발전, 원산지 누적 방식 등 합의됐거나 논의된 이슈를 더욱 발전시켜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는 데 이 FTA를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또 다른 10년이 지나면 한·EU FTA가 우리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길 기대한다.

김흥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특임파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