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박한 외환 딜링룸 > 미국과 북한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출렁인 9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딜러가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 급박한 외환 딜링룸 > 미국과 북한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출렁인 9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딜러가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북한의 끈질긴 도발이 불씨를 댕겼고 미국의 강경한 응대가 기름을 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고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는 세계 금융시장을 먼저 강타했다.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던 미국 주식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한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동반 하락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약세)하고,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고치로 치솟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금융시장 ‘흔들’

북한 리스크에 금융시장 휘청…'공포지수' 하루 만에 25% 치솟아
미국 고용지표와 유통주의 실적 호조에 8일(현지시간)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는 장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지금껏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달아오르던 투자 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장 마감 무렵 다우지수는 약세로 돌아서면서 33.09포인트(0.15%) 내린 22,085.34에 장을 마쳤다. 9거래일 연속 이어온 사상 최고치 행진도 멈췄다. S&P 500지수는 5.99포인트(0.24%) 떨어졌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한국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6개 중 4개가 하락했다. 이 중 자산 규모가 가장 큰 ‘아이셰어 MSCI 코리아’(-0.85%)는 1% 가까이 떨어졌다.

9일 약세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오후 들어 하락폭을 키우며 26.34포인트(1.10%) 떨어진 2368.39에 마감했다. 지난 6월21일(2357.53) 이후 약 1개월 반 만에 2370선이 무너졌다. 장 초반 외국인 투자자(2551억원 순매도)와 함께 ‘팔자’에 나섰던 기관이 순매수(3051억원)로 돌아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전날보다 25.20% 급등한 15.70으로 마감했다. 거래소가 집계하는 이 지수는 코스피200 옵션 가격을 토대로 미래 지수가 얼마나 변동할지 예측하는 지표다. 통상 코스피지수가 급락할 우려가 클수록 상승폭이 커진다.

북핵 리스크는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강타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1.29% 하락한 것을 비롯해 중국 홍콩 대만 증시도 모두 약세로 장을 마쳤다.

한국의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28%포인트 오른 연 1.833%에 마감했다. 2015년 5월26일(연 1.846%) 이후 2년3개월 만의 최고치다. 10년 만기 국고채와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각각 연 2.338%와 2.038%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선물시장에서 3년 만기 국채 선물 1만2307계약(1조2307억원어치)을 순매도했다. 지난 2일 이후 6거래일 연속 순매도다. 원·달러 환율은 10원10전(0.90%) 오른 1135원20전에 마감해 지난달 13일(1138원) 이후 처음 1130원대로 올라섰다. 한국의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만기 5년) 프리미엄(금리)은 이날 오후 런던시장에서 0.613%포인트를 나타냈다. 전날 0.577%포인트 대비 약 0.04%포인트 정도 올랐다.

충격 언제까지…

이날 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과거 북한 도발에 따른 증시 영향을 감안할 때 충격은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에도 사건 발생 당일 타격은 컸지만 수일 내 코스피지수가 정상궤도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과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2015년 비무장지대(DMZ) 포격 때도 당일만 코스피지수가 2~3% 빠지면서 크게 흔들렸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정학적 위기가 높아질 때마다 코스피지수의 변동성은 확대됐지만 대부분 10거래일 안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반면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대결국면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에서다. 그동안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발을 일삼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행동’까지 시사하면서 강경히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코스피지수를 사상 최고치(7월24일 종가 2451.53)로 밀어올린 주역이 외국인이라는 점도 불안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올 들어 지난달 2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0조4427억원어치를 사들인 외국인은 코스피가 고점을 찍은 이후로는 2조원 넘게 내다 팔고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미국과 북한이 양보 없는 대결국면으로 치달으면 상황이 과거와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며 “외국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정현/하헌형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