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판도라백·헵번드레스…셀럽들은 왜 지방시에 열광했나
미국 유명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와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 입은 ‘지방시’ 옷은 그를 더욱 우아하게 만들어줬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지방시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최근에는 비욘세, 리한나 같은 유명 가수들도 지방시 제품을 자주 입는다. 앤 해서웨이, 리브 테일러, 케이트 블란쳇, 매기 청 등도 지방시 팬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이 이들을 열광하게 만든 걸까.

[명품의 향기] 판도라백·헵번드레스…셀럽들은 왜 지방시에 열광했나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미

지방시는 1952년 프랑스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가 만든 브랜드다. 남성 디자이너인 그가 생각한 이상적 여성상은 “평범한 옷으로도 특별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다. 이 때문에 심플한 디자인, 우아한 실루엣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가 처음 내놓은 컬렉션은 ‘세러레이츠 스타일’이었다. 순면으로 된 얇은 스커트와 퍼프 소매가 달린 블라우스를 내놓았다. 당장 화제가 됐다. 맞춤복(오트쿠튀르)을 내놓던 패션하우스들이 대부분 통으로 된 드레스를 내놓을 때였다. 그래서 스커트와 상의를 별도로 제작하는 지방시의 ‘세퍼레이츠 스타일’이 주목받았다. 그때 지방시는 남성용 와이셔츠 원단으로 쓰이던 ‘셔팅’을 잘라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제작했다. 소재도 색달랐고 한 벌짜리 드레스에 익숙하던 여성 사이에선 상·하의가 분리된 믹스매치 스타일은 ‘핫’한 아이템이 됐다. 프랑스 유명 모델인 베티나 그라지아니가 이 제품을 입고 무대에 오른 뒤 ‘베티나 블라우스’로 불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듬해인 1953년 위베르 드 지방시는 오드리 헵번을 처음 만나 그를 위한 옷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작된 인연은 40년이나 이어졌다. 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옷의 실루엣,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는 스커트와 긴 목선을 두드러지게 하는 상의는 ‘오드리 헵번 스타일’이 됐다.

1960년대를 주름잡던 지방시의 여성복 디자인은 1973년 남성복 라인으로 이어졌다. 세련된 남성미를 보여주는 단순한 디자인, 고급 소재가 특징이었다. 1988년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에 들어간 뒤엔 젊은 디자이너들이 지방시를 더 세련되게 만들었다. 특히 2005년 수석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리카르도 티시는 2008년 남성복까지 지휘하면서 강렬하고 섬세한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명품의 향기] 판도라백·헵번드레스…셀럽들은 왜 지방시에 열광했나
‘판도라’ 가방이 인기 주도

지방시는 국내에선 ‘고소영 핸드백’으로 알려진 ‘판도라’ 가방으로 유명해졌다. 심플하면서도 입체적인 구조를 갖춘 판도라 백은 수납력도 뛰어나고 사이즈도 다양해 20대부터 40~50대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랑받았다. 둥그스름한 ‘나이팅게일’은 가죽의 질감을 강조한 핸드백이다. 2006년 처음 출시된 뒤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안티고나’도 입체감을 살린 핸드백으로, 기하학적인 곡선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련된 디자인과 입체적인 볼륨감, 가죽의 질감을 돋보이게 하는 제작 노하우 등이 지방시 핸드백의 인기 비결로 꼽힌다.

올해 내놓은 의류는 좀 더 자유분방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집중했다. 가을·겨울 컬렉션의 화보 촬영지로 코펜하겐을 찾아가 미래지향적인 건축물 사이에서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테일러 재킷과 이브닝 드레스의 조화, 따뜻한 나무 느낌의 골드, 캐멀, 옐로 색상을 채택한 점도 눈길을 끈다. 남성복으로는 헐렁한 슈트, 더블 다트를 넣은 바지 등 독특한 아이템을 내놨다. 무엇보다 반항적인 길거리 패션 감각을 더한 점이 특징이다. 커다란 자수를 새긴 남성용 코트, 단추로 열고 닫는 트레이닝 팬츠 위에 저지 소재 스커트를 매치한 여성복 등 창의적인 코디를 선보였다. 온통 새빨간 색으로 몸 전체를 감싼 여성복, 블랙과 핑크를 함께 사용한 점, 메탈 스터드 장식을 더한 통 넓은 점프슈트, 빈티지한 데님 등도 독특하다는 평가다.

올해 영입한 클레어 웨이트 켈러 아트 디렉터는 지방시의 향후 디자인을 짐작케 한다. 지방시가 여성 아트 디렉터를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현대적인 감성의 우아한 디자인이 지방시의 이미지였다면 앞으론 여성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좀 더 경쾌하게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