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CEO는 필요없다
한국 사회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탈권위’ 바람이 불고 있다. 새 대통령이 5·18 유가족과 눈물의 포옹을 나누고, 장애 어린이 앞에서 무릎 꿇고 이야기하는 격의 없는 행보 때문에 더욱 그렇다. 와이셔츠 차림에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참모진과 청와대를 산책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의 공감과 환호를 이끌어냈다.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유쾌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하다. 화려한 화장에 하이힐을 신고 일일 스튜어디스로 변신하거나 사무실 소파에 곤히 잠든 직원 옆에서 환히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여느 최고경영자(CEO)와 다른 탈권위적 행보로 직원과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는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회사 경영을 쇄신해간다고 한다. CEO는 직원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버진그룹이 건강관리, 통신, 항공산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이 바로 ‘권한의 위임’이었다.

대상을 창업한 고(故) 임대홍 회장의 탈권위적 행보와 소통의 노력도 아직까지 직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사내 수평적 조직문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임 창업회장이 임원들이 선물한 벤츠 승용차를 시승도 하지 않고 환불한 일화는 유명하다. 서울 신설동 한쪽에 연구실을 세우고 연구에 골몰하거나 본인이 제품에 대해 궁금할 때는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을 만나 열띤 토론을 하곤 했다. 직원과 같은 눈높이에서 생활하고 격의 없이 소통했다. 스스로 권위를 낮춰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해온 것이다.

런던정경대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연구진이 다국적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직원들이 엄격한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이 확장될수록 일에 대한 책임감이 증가하고 개인의 역량이 잘 발휘됐다고 한다.

필자도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이 권한을 나눠 가질 때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반한 진취적인 주인의식이 업무상 혁신을 넘어 삶의 동력과 행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직원 모두가 주인이 되면 CEO는 필요 없다. 유연한 조직 안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더욱 단단해지는 구조가 확립될 것이다. 필자는 열린 마음을 갖고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빛나고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임정배 < 대상 대표 limjungbae@daes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