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강추위'는 살아 있다
설이 지나면서 한겨울 맹추위는 좀 누그러지는 듯하다. 내일(4일)이 어느새 입춘이다. 절기상 봄을 알리는 날이다. 하지만 ‘입춘치’라는 말도 있듯이 이맘때면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곤 한다. 입춘치의 ‘치’는 추위의 옛말인 치위에서 왔다.

‘금년은 유달리 여름에 비가 없더니 또 겨울에는 눈이 없는 강추위이다.’ 동아일보는 1940년 1월28일자에서 ‘눈이 없는 강추위’를 전했다. ‘폭설과 함께 강추위가 계속 몰아쳐 4일 아침 수원 지방의 기온이….’ 40여년 뒤인 1981년 이 신문은 조금 다른 강추위 소식을 알렸다. 이번엔 ‘눈이 있는 강추위’다.

토박이말 강추위는 맑은 날씨에 매섭게 추운 것을 말한다. 그러니 눈도 바람도 없다. 이게 원래 쓰던 강추위다. 고유어 ‘강-’이 ‘물기가 없는,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이란 뜻을 더한다. 강기침(마른기침)이니 강다짐(밥을 국이나 찬 없이 먹는 것)이니 하는 게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중에 쓰임새가 넓어져 ‘단단히 강조해 확인하는 것’을 뜻하는 강다짐도 거기서 비롯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눈 내리는 강추위’가 널리 퍼졌다.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고유어 ‘강-’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그 자리를 한자어 ‘강(强)-’이 차지했다. 한글학회에서 《우리말 큰사전》(1991년)을 펴낼 때만 해도 ‘강(强)추위’란 말은 없었다. 문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내일은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강추위가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말을 틀린 표현으로 다뤘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그런 말을 썼다.

국립국어원이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을 내면서 강(强)추위를 표제어로 올려 우리말에 숨통을 터줬다. ‘일반에 널리 쓰이는 말은 기존 사전에 없는 표제어라도 표준어로 수용한다’는 편찬지침 결과였다. ‘강(强)-’은 ‘매우 센, 호된’의 뜻을 더하는 말로 강타자, 강심장, 강행군 등으로 쓰인다. 엄동설한은 ‘눈 내리는 한겨울의 심한 추위’를 이르니 굳이 따지자면 강(强)추위다.

순우리말로는 겨울 강추위에 여름 강더위다. 강더위는 비가 없이 볕만 내리쬐는 것을 이른다. 두 말은 눈이 없고 비가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에 비해 온도와 습도가 매우 높아 찌는 듯한 더위를 무더위라 한다. 무더위는 ‘물+더위’로 만들어졌다. 토박이말 강추위와 강더위는 잘 쓰이지 않아, 반대로 무더위는 너무 흔히 쓰여 그 말의 ‘정체’를 놓치기 쉽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